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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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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늘

                                                                                                 김현희

   후박나무가 젖은 잠을 털어내고
 며칠 품었던 그늘을 꺼내 펼쳐놓는다
 나무가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바로 이때,
 햇빛은 나무들의 거울이다
 이리저리 몸을 비추느라 눈이 부신 나무들
 거울의 각도에 따라 키는 늘어나고 줄어든다
 
 나무의 품을 통과한 빛은 오직 검은 빛
 제 몸이 푸르다는 걸 아는 나무는 세상에 없다
 
 키만큼 깔리는 그늘멍석
 둥근 그늘 속으로 한바탕 새소리가 내려앉는다
 부리에 쪼인 그늘에 구멍이 났다
 입이 가려운 참새들, 수다스런 풍경을 물고 건너편 회화나무로 날아간다
 가지마다 소리가 열리고
 저편 하늘이 넓어졌다
 
 새들의 부산한 날갯짓에 낮은 한 뼘씩 줄어든다
 
 이곳에 먼저 터를 잡은 후박나무, 가장 넓은 평수를 차지했다
 지난여름 뼈마디를 늘리던 손
 바람에 그늘이 찢어지고 나무의 거울도 금이 갔다
 
 폭설에 팔 하나를 잃고 끙끙 앓던 나무
 아름드리 저 품에 우레를 피해 몸을 웅크리던 절박한 순간들이 숨어있다
 사라진 가지를 기억하는 박새가 후박나무를 맴도는 동안
 나무는 내내 환상통을 앓았다
 
 바람이 후박향을 물고 빠져 나간다
 바람의 손짓 따라 그늘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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