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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상의 성자 하느님 나라에 들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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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늘 우리 곁에 함께해줄 것만 같았던 김수환 추기경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자신을 두르던 사제의 옷을 벗고 뒤따르는 이들에게 예언자의 십자가를 남겨놓은 채 성자의 길을 따라 하느님 나라로 떠난 그가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원한다.

김 추기경을 기억하는 이들이 슬픔과 함께 커다란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가운데서 희망과 사랑을 들려주던 그의 따스한 목소리와 푸근한 웃음을 이제 더 이상 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2월 16일 선종 소식이 전해진 이후 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명동성당에는 고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추기경과 일면식도 없는 이들부터 종교가 다른 이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숭고한 삶을 기리고 있다.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어 그가 이 땅에 심어온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 모습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우리 시대의 ‘성자(聖者)’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고자 했던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사제직으로 불림을 받은 58년 간 김 추기경이 주님의 종으로서 보여준 삶은 그를 따르던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비신자들까지도 그리스도의 향기에 젖어들고 좋으신 주님을 맛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교회 안팎에서 뿜어낸 향기는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랑을 산 김 추기경은 알려진 대로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시대의 징표에 따른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목소리는 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을 넓히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김 추기경은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하면서부터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인사말을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른 교회 쇄신과 현실참여의 원칙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추기경이 우선순위를 둔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믿음에서였다. 교구장으로서 바쁜 일정 가운데도 해마다 성탄 때면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등 가난한 이들 가운데 서있는 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민주화 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8년 동일방직노조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김 추기경은 성탄?사순 메시지나 강연, 시국담화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짚어내는 일에 앞장섰다. 이로 인해 추기경 자신뿐 아니라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 민주화의 버팀목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의 깊은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를 늘 소외된 곳에 있게 했다.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이 몸소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갔다. 강원도 탄광촌으로 들어가 탄광 체험을 했으며, 누구도 돌보지 않던 사형수의 손을 마주잡고 하느님의 자비를 빌었고, 외국인노동자들과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눴다. 또 비닐하우스촌에서 집 없는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매춘 여성과 에이즈 환자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는가 하면 수많은 복지시설을 찾아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을 비롯해 노동사목, 빈민사목 등 가난한 이들 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다양한 사목의 틀은 대부분 김 추기경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한국 교회의 대사회 활동에 대한 인지도와 높은 지지도 대부분 김추기경에 의해 다져지고 발전해왔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 결과 교구장에 임명된 당시 본당 48개, 공소 63개, 신자 14만 명이었던 서울대교구의 교세는 그의 재임 30년 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 1998년 말에는 본당 203개, 공소 6개, 신자 125만 명으로 성장했다.

이런 그가 우리 사회의 가장 존경스런 종교인으로 꼽혀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랬기에 많은 이들이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떠나, 그와 함께 동시대인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사랑’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의 사랑으로 인해 남겨진 몫이 있다. 바로 고인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올바로 깨닫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는 일이다.

김 추기경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는 일을 모토로 삼았다. 하지만 그것은 김 추기경만의 몫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몫이기도 하다. 그가 우리 사회를 위한 최고 덕목으로 꼽은 정직과 성실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들이다.

등불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법이다. 김 추기경의 삶이 관통해 온 저 어둠의 시대 속에서 빛을 발했고 지금도 찬란히 빛나는 주님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나아갈 때 그의 삶은 우리 가운데서 끊임없이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다시 한번 주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이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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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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