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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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아 김수환 추기경님 /전대섭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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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과의 인연은 그리 많지 않았다. 취재 현장에서 가까이 혹은 멀리서 바라보며 운좋게 악수 두어번 한 게 전부였다. 지난 2007년 9월, 신문사 소임을 맡고 혜화동 주교관으로 인사차 찾아간 것이 생전에 뵌 마지막 모습이 될줄이야.
이미 기력이 많이 쇠하신데다 한쪽 청력은 거의 잃으신 터라 대화조차 쉽지 않았지만 난생 처음 지근거리에서 추기경님을 독대하는 감회는 남달랐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추기경님께서는 “마음이 곧 생각이고 생각이 글이 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분의 삶을 생각하고 복음을 생각하라”는 말씀 같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수 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때 양손 가득 안겨주시던 당신의 모습이 담긴 열쇠고리와 ‘추기경 묵주’가 이젠 유품으로 남았다.
마지막 날 밤, 흰 눈꽃이 날렸다. 아름다웠다. 당신이 몸 누인 삼나무 관은 이미 굳게 닫혀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얼굴이지만, 애타는 걸음 걸음들은 명동성당 가는 길을 재촉했다. 장례식이 있던 날, 수만 인파가 성당 안과 밖을 에워쌌다. 고별사를 하는 이도, 이를 지켜보는 이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더러는 차가운 땅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고,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는 우리의 슬픔을 확인할 뿐이었다.
추기경 김수환. 그의 삶은 오롯이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었다.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처지를 뼛속 깊이 느끼고 알았기에,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했다. 하느님이 이토록 아끼시는 인간이기에, 뭇 인간을 향한 그의 사랑과 관심은 자신이 체험한 사랑만큼 깊고 넓었다.
“누가 내 이웃인가”라는 질문에 추기경께서는 “인간인 한 모두 사랑의 대상이요, 그가 누구이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곤경에 처했을 때 이웃사랑의 대상이 된다”고 답하셨다. 암울했던 시절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명동성당, 그 한복판에 추기경께서 계셨다.
“인간이 참된 삶,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단순히 여러 덕목 중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계명의 전부이며 그 완성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성경 말씀처럼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저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중)
그는 독재정권에 맞서 할 말을 한 ‘시대의 양심’이었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에 화해의 다리를 놓고 화합과 평화를 추구한 ‘큰 어른’이셨다. 억압받고 가난한 이들 곁에 머물고자 했던 ‘참 목자’셨으며, 마지막까지 안구 기증으로 세상에 빛을 남기고 간 촛불과도 같은 분이셨다. 그의 삶은 종교의 벽을 넘어 우리 사회에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간에게 사랑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몸소 보여주신 진정한 이 시대의 성자셨다.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늘 고백하셨던 분. 한국 천주교회의 최고 어른이자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지만 늘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끼며 안타까워 하셨던 분. 급기야 당신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셨던 분.
“평생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십시오.” 당신의 마지막 말씀은 그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 모두의 가슴에 아로 새겨져 영원히 남을 것이다.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가신 추기경님. 이제 천국에서 생전에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하셨던 어머니와 함께 영원한 행복과 안식을 누리십시오. 당신 말씀대로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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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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