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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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당신은 ''사랑의 씨앗''과 ''신앙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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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평생 낮은 자세로 낮은 곳을 찾아다닌 목자.
김 추기경이 1999년 한겨울 경기도 파주 시몬의 집에 찾아가 그곳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추모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2월 22일 오후 명동성당.

 마당에서 서성거리던 한 중년 부인이 기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기는(성당 안에는) 천주교 신자만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얼마 뒤 몰골이 초췌한 50대 남성은 "안구를 기증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성당 들머리를 내려오면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이번에는 20대 젊은 연인들이었다.

# 3킬로미터 추모 행렬 의미는?

     한 평생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살았던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곁을 떠나면서 실로 크나큰 선물을 남겼다.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사회에 남긴 `사랑의 씨앗`이다.

 외국에서도 놀란 추모객 40만 명 숫자는 국민들이 추기경의 삶에서 속속 드러나는 사랑에 그만큼 갈증을 느꼈다는 증거다.

 국민들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면 추운 날씨 속에서 3~4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새벽부터 명동으로 끝없이 모여 들었다. 추기경의 사랑을 추억하며 순서를 기다렸기에 추운 줄 몰랐고, 발이 아픈 줄도 몰랐다.

 닷새 동안 추모 행렬에서 그 흔한 실랑이나 고함 한 번 없었다. 오히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앞으로 가시라"며 순서를 양보했다.

 이 같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작은 미담들이 모이고 모여 `명동의 기적`을 이뤄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명동에서 천국의 풍경을 보았다"는 감탄을 쏟아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치인들도 정쟁(政爭)을 중단하고 어르신이 남긴 화해와 통합의 정신을 떠올렸다. 추모 기간만큼은 여야, 진보ㆍ보수, 빈부, 종파, 이념을 떠나 추기경이 그토록 강조했던 사랑으로 하나가 됐다. 그리고 추기경의 안구 각막으로 두 사람이 빛을 보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장기기증 문의가 빗발쳤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기불황과 생존경쟁에 지친 국민들은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언뜻 희망을 보았다. 모든 말과 실천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귀결되는 추기경의 삶을 통해 희망과 사랑, 다시 말해 삶의 근본적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가 부와 성공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오는 동안 등한시했던 가치의 재발견이다.

 소설가 공지영(마리아)씨는 "그분이 준 각막으로 두 사람이 눈을 떴다지만 실상 우리 모두가 그분으로부터 잃어버린 내면의 눈을 다시 받았다"(동아일보 기고)고 말했다.

 추기경이 퍼뜨린 `사랑 바이러스`는 타 종교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개신교의 유명 원로 목사들이 수입의 5를 떼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2월 23일 들려왔다. "우리에게는 왜 추기경 같은 인물이 없냐?"며 성직자의 본분과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성찰해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추기경은 또 `신앙의 씨앗`을 남겼다. 몇몇 본당에 확인한 결과 쉬는신자가 다시 돌아오고 있고, 천주교 입교절차 문의 전화가 부쩍 늘었다.

 이는 추기경 신드롬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모든 매스컴이 선종 관련 보도를 쏟아내면서 온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고, 지상파 TV 3사가 이례적으로 장례미사를 생중계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추기경의 삶과 정신에 대한 감동이 천주교 호감도 상승으로 이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22일 명동성당 마당에서 만난 중년 부인도 천주교에 대한 궁금증, 또는 추기경이 온 생애를 바쳐 따랐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기웃거렸을 것이다.

 국민들은 추기경 삶에 면면히 흐르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정의, 인간 존엄성 수호가 종교의 가치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가난한 이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생명의 가치가 점점 가볍게 여겨지는 세태에서 국민들은 그런 가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자각과 위로는 신앙의 씨앗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자들도 국민장(國民葬)을 방불케하는 추모 열기를 접하면서 "추기경이 자랑스럽고, 나 자신이 천주교인이라는 게 뿌듯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서울 미아3동본당 김지영 주임신부는 "추기경 선종이 3월 1일 예비신자 입교 환영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결과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장례기간 본당에서 위령기도를 바칠 때는 주일미사를 방불케할 만큼 신자들이 많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 종교와 계층을 초월한 추모 인파.
 
 # 복음 실천으로 유지 받들어야

 추기경이 남기고 간 선물은 한편으로 살아 있는 자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눈물을 닦고 `추기경의 뜻과 정신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라는 큰 과제를 고민해야 한다.

 추기경은 `세상 속 교회`를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줬다. 매우 낮은 자세로 성체성사의 주님처럼 생명의 빵이 되는 삶, 모든 이의 `밥`



가톨릭평화신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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