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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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장례미사와 하관예절 이모저모

방송사 동시 생중계…온 국민이 마지막 길 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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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님, 고맙습니다. 편히 쉬세요.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운구행렬이 2월 20일 장례미사가 봉헌된 명동성당을 출발하자 구름처럼 모여든 신자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
 


    2월 20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는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된 김 추기경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자리였다. 신자는 물론 전국의 모든 국민이 TV로 생중계된 김 추기경의 장례미사를 지켜보며 우리 시대 마지막 어른이 가는 길에 함께했다. 지상파방송 3사가 동시에 생중계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인산인해

    아침 일찍부터 김 추기경 장례미사를 지켜보러 온 사람들로 명동성당과 가톨릭 회관 앞마당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영하의 추위에서도 참례자들은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숙연하게 장례미사를 기다렸다.
 1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취재기자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와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미사시간 10분 전부터 사람들은 가톨릭 성가 `야훼는 나의 목자`를 부르며 고인을 애도했다. 일부 신자들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틀간 명동성당에서 안내봉사를 했다는 전선화(스텔라)씨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며 "추기경님께서 편히 가시도록 기도드렸다"고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이정심(요안나프란치스카)씨는 "추기경님 마지막 모습을 가까이서 뵙고 싶어 어제 대구에서 올라왔다"며 "추기경님과 한 시대를 함께 했다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일반 참례자들은 대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꼬스트홀과 성모동산, 계성여고 앞, 가톨릭회관 앞마당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장례미사 현장을 지켜봤다. 꼬스트홀에서는 김운회 주교와 사제단이, 회관 앞마당에서는 조규만주교와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미사를 동시에 봉헌했다.

방송 헬기 운구행렬 동행

 영성체 후 고별예식이 이어졌다. 이 때 마지막으로 고인의 영상메시지가 상영되자 곳곳에서 통곡이 터져나왔다. 시대의 지도자이자 영적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절정에 달했다.
 낮 12시 추기경 관이 대성당에서 운구차량으로 옮겨지고 차량은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서서히 명동을 벗어났다. 댕~댕~. 명동성당 일대엔 조종이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추기경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은 신자들은 장례차량에 손을 대고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며 연신 성호를 그었다.
 이영옥(클라라)씨는 "추기경님이 떠난 명동성당히 왠지 쓸쓸해 보인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대원(안드레아)ㆍ대현(미카엘) 형제는 "현장에서 장례미사를 지켜보니 감격스러웠다"며 "추기경님 덕분에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장례미사가 끝나고 참례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명동성당 일대가 마비되기도 했지만 일부 신자들은 쉽사리 명동성당을 떠나지 못했다.
 장례미사가 봉헌된 성당에는 추기경을 추모하며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신자들로 가득찼다. 또 일부 신자들은 성당 뒷편에 놓여진 추기경관 모형을 붙잡고 흐느꼈다.
 경찰은 이날 국가 행사에 쓰는 오픈카 2대와 사이드카 13대를 배치해 경기도 용인 장지까지 김 추기경의 운구행렬을 인도했다. 운구차량과 정진석 추기경이 탄 승용차, 주교단ㆍ사제단ㆍ수도자ㆍ신자들을 태운 버스 24대, 취재차량 등이 긴 운구행렬을 이뤘고, 하늘에서는 방송사 헬기가 동행했다. 행렬이 지나가는 길가의 신자들과 시민들은 성호를 긋거나 손을 흔들며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묘역엔 하얀 눈으로 축복

 김수환 추기경의 장지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서울대교구 묘원 성직자묘역. 강한 바람이 부는 영하권의 추운 날씨도 김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아침 일찍부터 모여든 신자들 발길을 막지는 못했다.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축복이라도 하듯 성직자 묘역은 밤새 내린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고 노기남 대주교 묘소 오른쪽에 추기경 묻힐 무덤자리를 1.2m 깊이로 이미 파놓은 상태였다.
 "성남 집에서 새벽 5시에 나왔다"는 백옥순(루치아, 75, 수원교구 태평동본당) 할머니는 "명동성당에서 6시 미사를 참례한 뒤 장례미사에 입장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아예 장지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백 할머니는 "세 번이나 조문을 다녀왔지만 추기경님의 선종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임호숙(안젤라, 수원교구 분당 마태오본당)씨는 "추기경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아침 9시 30분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며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안고 천국에 올라 평화를 누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이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15분. 검은색 운구차량이 보이자 이미 운집해 있던 신자들의 성가와 기도 소리는 더욱 커졌다. 1시 30분경 주교단과 유가족, 운구행렬을 따라온 신자 2000여 명이 함께한 하관예절이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운구한 시신을 하관하자 신자들 사이에서 성가와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관 순간 곳곳에서 오열

 하관 후 정 추기경이 다시 성수를 뿌렸고 이어 김 추기경의 관임을 표시하는 붉은 `명정(銘旌)`이 관 위에 올려졌다. 명정에는 `추기경 광산 김공 수환 스테파노 지구`(樞機卿 光山 金公 壽煥 스테파노 之柩)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명정 위에 한지가 놓이고 `횡대`로 관을 완전히 덮었다.
 무덤 주위로 주교단이 도열했고, 정 추기경, 주교단, 유가족, 김 추기경 비서 신부ㆍ수녀 등이 차례로 성수를 뿌렸다. 이어 같은 순서로 삽으로 흙을 뿌리는 의식을 거행하자 일부 신자들은 고인의 유해가 차가운 땅 속에 묻히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오후 2시경 하관예절이 끝났지만 상당수 신자들은 추기경 무덤 앞으로 몰려나와 흙을 한 줌씩 뿌리는 것으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을 달랬다.
특별취재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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