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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바다 같은 마음으로 우릴 품어 주셨는데…

서울 빈민사목위원회 추모미사에서 강론 대신''추억''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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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8일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사제단이 공동집전한 김수환 추기경 추모미사에서 고 제정구 의원 부인인 신명자씨가 김 추기경과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sofi
 


  "자네는 평소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것이 제일 힘든가?"

 "네? 아…, 저는 무시당할 때 제일 힘듭니다."

 "나도 그래.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기도 힘든 모멸과 무시를 당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지."

 25년 전 이강서(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과 면담할 때의 대화다.

 12월 8일 서울 명동 전진상교육관에서 봉헌된 김수환 추기경 추모미사. 빈민사목위원회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된 이날 미사에는 강론이 없었다. 사제단과 미사참례자들이 김 추기경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으로 대신한 것. 이강서 신부는 "22년 전 추기경님의 결단으로 빈민사목위원회가 생겨났고 선교본당은 추기경님의 마지막 중차대한 결재였다"면서 김 추기경을 회고하고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의 하소연을 귀담아들어 주시던 아버지를 떠나보냈다는 것이 슬프지만, 그분과의 추억을 함께 작게나마 나누고자 이 미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1973년 김 추기경에게서 홀로 사제품을 받은 박문수(예수회) 신부는 "당시 예수회에서 서품 전에 치르는 종합시험 치르러 미국에 가는 바람에 혼자 절두산성지에서 김 추기경님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며 "서품식에서 `현대에도 순교자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86년 성탄미사를 철거민들과 함께하시겠다고 상계동에 오셨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재개발로 망가진 땅을 고르게 하자 철거용역들은 굴착기로 50여 개의 웅덩이를 팠습니다. 그 현장에서 1000여 명이 함께 봉헌한 성탄미사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상계동 철거지역 주민이었던 김종수씨는 "늘 만나면 제일 먼저 별일 없느냐, 다친 사람은 없느냐, 잠은 잘 잤느냐, 밥은 먹었느냐 이 네 가지 질문을 하시곤 했다"며 "바다와 같은 넓은 가슴으로 이 땅의 빈민들을 품어 안은 김 추기경님의 애정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제정구 의원의 부인 신명자(베로니카, 57, 인천교구 은행동본당)씨는 "제 의원과 정일우 신부님이 1986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직후 일본에 갔을 때 마침 주교회의 참석 차 일본에 계셨던 김 추기경님께서 자식 자랑하는 아버지처럼 제 의원을 일일이 주교님들께 소개했다"고 회고했다. 또 제 의원 장례미사 봉헌 후 국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제 의원이 감옥에 갔었기에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제 의원이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는 이유가 뭐냐, 당신도 감옥에 갔다오지 않았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이들은 미사 후 김 추기경 영정에 머리 숙여 인사하고 가난한 이들을 남달리 사랑한 추기경을 기렸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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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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