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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근 신부가 전하는 김수환 추기경 투병기

고독 만큼 주님도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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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은 죽음을 앞두고 절대 고독을 느끼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
사진은 김 추기경이 2007년 5월 주교관이 있는 서울 혜화동 신학교 교정을 거니는 모습.
 

"나는 요즘 정말 힘든 고독을 느끼고 있네. 86년 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절대 고독이라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는데도 모두가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하느님마저 의심되는 고독말일세. 모든 것이 끊어져 나가고 나는 아주 깜깜한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느낌일세.

 세상의 모든 것이 끊어지면 오직 하느님만이 남는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시려고 그러시나봐. 하느님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그러시겠지? 작년에 돌아간 정명조 주교가 요즘 더 많이 생각나는구먼. 아마, 죽고 나면 자네나 나나 모두 하나일거야. 내가 죽으면 자네 꿈에 나타나서 꼭 가르쳐 주겠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해 5월 23일 서울 혜화동 주교관으로 자신을 찾아온 고찬근(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신부에게 한 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인간으로서 절대 고독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끝까지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김 추기경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추기경과 가깝게 지냈던 고 신부가 최근 김 추기경 누리방(cardinalki m.catholic.or.kr) `추모게시판`에 일기 형식으로 전한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김 추기경의 투병 모습을 1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진솔한 필치로 담은 이 글의 제목은 `추기경님 투병기`.

 투병기에 나오는 김 추기경은 병이 위중한 가운데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으며,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늘 미안해했다. 일부러 씩씩한 모습을 보이려고 물병을 양손에 들기도 했고, 고 신부가 주사맞기 싫으셔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으면 특유의 개구쟁이 미소를 짓곤 했다.

 고 신부는 김 추기경이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위독했던 지난해 10월 4일 일기에서 "하루 종일 깨어나지 못하셨다. 종점을 향해 달리는 낡은 기관차처럼 힘겹게 숨을 몰아쉬셨다. 많은 분이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셨다"며 안타까워하다가 "밤 11시 30분경 추기경님이 눈을 뜨셨다. `아야, 아야!` 온몸이 아프다고 호소하셨다. 그 `아야, 아야`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전했다.

 11월 13일 일기는 고 신부가 변비 때문에 고생하는 김 추기경이 관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직접 발을 씻긴 뒤 로션을 발라주는 모습을 담았다. 또 "추기경님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와 함께 있는 게 재미없으시다며 `가라, 가라` 하셨지만 그래도 좀 더 오래 있으면 좋아하셨다"면서 김 추기경의 인간적 면모를 소개했다.

 고 신부는 김 추기경의 선종 이틀 뒤인 2월 18일 마지막 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2009년 2월 16일 오후,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을 눈앞에 두고 선종 소식을 전화로 들었습니다. 멍해지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고통이 너무 많으셔서 이제는 가시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막상 가셨다 하니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습니다. 병실로 뛰어 올라가니 늘 계시던 그 침대에 주무시는 듯 누워 계셨습니다. 발과 손과 이마를 만져보았습니다. 따뜻했습니다.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추기경님 저 잘 살게요. 사랑해요. 좋은 곳으로 가세요. 그리고 돌아가시면 저에게 죽음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겠다던 말씀 잊지 않으셨죠?`
 그날 밤 늦게 경황없이 잠들었는데 추기경님이 편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천국의 사인(sign)으로 알아들을 것입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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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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