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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김수환 추기경] 큰 어른으로서 인품에 감동

김찬진(야고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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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깥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잠시 벽의 한 부분을 응시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기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주신 `보물`이 걸려있다. `그리스도의 가정`이라고 손수 붓으로 써주신 액자다. 1987년 10월 어느 날 필자 집에 오실 때 주신 것이다. 그 보물을 보면 김 추기경님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안부를 묻는 듯 하다.
 

 
▲ 2002년께 필자 김찬진 변호사(가운데) 집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이 김 변호사 부인 이영애 변호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김 추기경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초반 서울 방배동본당에서 김운회(현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주교) 주임신부님을 모시고 성전건립위원장으로 일하던 때였고, 그 뒤 다른 평신도들보다 김 추기경님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본당 일을 시중들고 행정 관료로 일하고 있던 터라 더 그랬을 것이다.

 교회 일을 하면서, 특히 김 추기경님이 주신 숙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말 하느님 뜻에 맞는 일이라면 아무리 안될 것 같은 일도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교회 일을 하도록 나를 도구로 불러주셨던 김 추기경님께 새삼 감사드린다.

 의정부 한마음 수련원 부지가 군사보호 지역에 묶여 건물을 지을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했던 점, 방배동본당에서 방배4동본당 분할을 위해 부지 확보때문에 애를 먹었으나 예상치 않게 해결됐던 점, 가톨릭대 통합 문제 등이 기억에 난다. 한마음 수련장 축복식 때는 김 추기경님에게서 감사패도 받았다.

 가톨릭대 통합과 관련해 김 추기경님께서 통합을 결심하신 것은 1986년께로 기억한다. 그 때 행정관료로 있다가 변호사 개업을 한 나에게 추기경님은 가톨릭대학(신학대학, 의과대학)과 성심여자대학을 통합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물으시고, 당시 문교부 허가를 얻는 일을 맡아 알아봐달라고 하셨다.

 문교부 담당자들을 만나본 결과 통합 당사자들이 합의한다면 다른 문제는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교부의 회답에 추기경님은 매우 기뻐하셨다. 그런데 성심여대 동창회가 통합하는 대학 이름에 `성심`이란 표현이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추기경님은 "그럼 생각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지" 하시곤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으셨다.

 1995년 통합이 이뤄질 때까지 누굴 탓하지 않고 기다리신 추기경님을 보면서 큰 어른으로서 인품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대인의 가슴을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김 추기경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달랐지만, 법조인에 대한 관심도 각별했다. 법조인 세례식을 친히 집전해주셨으니 말이다. 아내(이영애, 변호사, 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가 사법연수원 교수로 근무했을 때 사법 연수생 대상 예비신자 교리반을 만들어 운영했다. 교리과정을 마치고 서초동성당에서 세례식을 거행할 때 추기경님께서 주례하셨다.

 바쁜 시간을 쪼개 추기경님이 미사를 집전해 주신 것은 법조인이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그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법조인은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이들입니다. 인간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지만 특히 법조인에게 더 중요합니다. 법조인이야말로 인간 존엄 의식이 확실해야 합니다." 추기경님의 이 말씀을 법조인에게 확산시키기 위해 법조인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추기경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추기경님은 일제 말기에 태평양에 있는 지치지마라는 섬에서 학도병으로 미군 상륙을 맞았고, 주일에 미국 군종신부가 오셔서 미사 드릴 때 복사를 자원했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당시 점령군과도 `가톨릭`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하나될 수 있었다며 "가톨릭은 이런거구나. 모든것을 초월하는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몇년 전부터 아내와 같이 생명운동에 참여하면서 미국, 호주 등 외국을 다니며 생명운동 관계자들을 만날 때 추기경님의 이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외국의 생명운동 관계자들이 생면부지인 우리 부부에게 `가톨릭`이라는 공통분모 하나만보고도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은 `가톨릭은 하나`임을 실감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생명운동 일은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또 우리 부부가 하는 일이 하느님 뜻에 맞는 일인지, 김 추기경님 정신을 살아가는 일인지 계속 묵상하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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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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