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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2) 김수환 추기경, 죽음의 가치를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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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은 하느님 뜻을 따르는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과연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사진은 김 추기경 선종 직후 입원실에서 수녀들이 고인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해 2월 16일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 하나를 던졌다. 도대체 `무의미한 연명치료`란 무엇이고, 무의미한 연명치료 범위는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존엄사라는 표현으로 익숙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문제는 김 추기경이 병세가 악화된 후에도 인공호흡 같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촉발됐다. 김 추기경이 죽음을 선택했느냐, 아니면 죽음에 순응했냐는 것이 문제 핵심이었다.

의료진은 김 추기경이 선종하기 4개월 전 일시적 호흡곤란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그리고 선종 때에도 기관지를 절개하고 튜브를 삽입해야 하는 인공호흡 치료를 하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 없이 단지 죽는 순간만을 연장할 뿐인 기계적 치료는 받지 않고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다는 김 추기경 평소 뜻을 따른 것이었다. 김 추기경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겸손하게 따랐고, 당신 삶을 하느님 손에 맡기면서 생을 마감했다.

 
 논란은 사회 일각에서 김 추기경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결국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불거졌다. 김 추기경 선종을 존엄사법 제정에 당위성을 제공하는 하나의 근거로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인공호흡기 제거를 놓고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던 김 할머니 건으로 존엄사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던 시점이었다.
 
 김 추기경 선종은 김 할머니 소송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하던 원고 측은 대법원 재판에 김 추기경 사례를 자료로 제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추기경 사례가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존엄사법 제정에 힘을 보태는 자료로 악용된다는 사실에 대해 교회는 즉각 우려를 표명하고, 존엄사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존엄사법은 안락사를 허용할 수 있는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김 추기경 선종 직후 발표한 담화에서 김 추기경 선종은 결코 존엄사가 아니며, 존엄사 관련 입법 추진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위원회는 "인간 존엄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자연적 죽음의 순간에 법률적 잣대로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인간의 자연적 죽음을 훼손시킬 수 있는 존엄사법은 결코 제정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도 좋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존엄사법 제정 논의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사회 여론이 존엄사법 제정에 호의적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가톨릭은 다시 한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교회의는 7월에 기자회견을 열어 `안락사로 인식되는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존엄사법 제정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회는 성명을 통해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일부 의료계와 언론이 존엄사로 규정짓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에도 생명이 유지되는 사실에 대해 매우 당황해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논의되고 있는 존엄사가 곧 의도적 죽음을 초래하는 안락사였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면서 존엄사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천명했다.
 
 가톨릭과 뜻을 함께하는 각계 성명이 잇따랐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죽음에 임박한 환자 스스로 연명치료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생명과 직결된 연명치료 중단 관련 법률 제정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또 장애인 관련 4개 단체는 서울대병원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진료권고안`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존엄사법이 처음에는 안락사 허용을 제한하더라도 점차 안락사 대상이 확대되고 그 방법도 잔인해질 것이 뻔하다"며 "중증 장애인이나 환자들 생명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고, 건강상태에 따라 생명가치를 달리 평가하는 극단적 반문명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 10월에는 대한의사협회ㆍ대한의학회ㆍ대한병원협회가 공동으로 `연명치료 중지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연명치료 중지 대상 범위를 식물상태 환자까지 확대하고, 가족 동의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존엄사를 사실상 허용하는 것으로, 교회으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신상진ㆍ김세연 두 의원이 각각 무의미한 연명치료 관련 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정부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으로 법 제정을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서는 법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추기경이 화두로 남긴 무의미한 연명치료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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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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