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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4) 추기경의 흔적 서린 추억의 병실

소박한 병상엔 눈부신 햇살 한 줌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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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6010호 문을 열다.


 
▲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과 소박한 작별을 고한 병실 모습.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 만이다. 지난 1월 27일 김 추기경 선종 1주기를 앞두고 아직도 김 추기경의 마지막 흔적이 곳곳에 서려있는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6010호 병실을 찾았다.
 지난해 3월 23일 서울성모병원이 개원하면서 옛 강남성모병원의 모든 입원실과 진료실이 새 병원으로 이사를 가고 교수 연구실과 호스피스센터, 임상연구센터, 정신과 병동을 제외하고 현재 4~6층은 리모델링을 앞두고 비어 있는 상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김 추기경이 입원해 있던 6층에서 내렸다. 전등이 모두 꺼져있는 복도는 조용한 적막감이 흘렀다. 복도 양 옆 일반 병실에는 빈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굳게 잠겨 있던 문을 열고 6010호 병실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십자고상과 김 추기경이 사용하던 침대, 책상, 의자만 빈 병실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김 추기경이 159일간 묵었던 40㎡(약 12평) 남짓한 병실 곳곳에는 아직도 김 추기경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금방이라도 김 추기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으며 두 손을 잡아주실 것 같다.
 김 추기경이 떠난 병상은 말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침대 위에는 환자복과 이불이 잘 개어져 있었다. 이 침대 위에서 추기경은 환자복을 입고, 한 손에 나무 묵주를 쥔 채 세상과 소박한 작별을 했다.
 머리맡 선반에는 김 추기경의 손때가 묻은 검정색 표지의 신구약 합본 성경책이 놓여 있다. `강남성모병원 원목실`이라고 찍혀 있는, 병실마다 놓여 있던 성경책이다. 김 추기경은 선종 며칠 전까지도 의료진이나 간병인들에게 성경을 펴들고 복음을 들려주었고, 비서 수녀가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성경을 들으며 잠들곤 했었다.
 침대 아래 쪽에는 추기경이 제대 삼아 미사를 봉헌하거나 식사를 하던 바퀴 달린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김 추기경은 매일 오전 10시쯤 병실에서 비서 신부, 수녀와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영성체도 했다. 병실 한편을 지키고 있는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프린터가 그대로 놓여 있다. 김 추기경은 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인터넷도 했다.
 평소 병실 벽에는 김 추기경이 생전에 그린 자화상 `바보야` 그림 액자가 걸려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 눈, 코, 입을 간단한 선으로 쓱쓱 그린 자화상 하단에 적어 넣은 `바보야`라는 글귀가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그림이다. 지금은 다른 유품과 함께 따로 보관되어 있다.
 김 추기경은 사람들의 궁금증 어린 질문에 "바보같이 안보여요? 그림과 똑같지는 않아도 내 모습이 바보에 가까워요.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하고 대답했다.
 
 병실 창으로 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고 있다. 김 추기경은 저 창문 밖 무성하던 나뭇잎이 겨울바람에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묵상했으리라.
 김 추기경은 2008년 9월 11일 6010호에 입원했다. 그 전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이때가 마지막 입원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결국 마지막 입원이 된 5개월 동안 수차례 생사를 오가는 위기를 겪었지만 김 추기경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2008년 10월 4일 주말에 김 추기경 병세가 갑자기 나빠져 1차 위기가 찾아왔다. 기관지염으로 가래가 찼고 스스로 가래를 뱉어 내지 못했다. 호흡 곤란 때문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 비상 호출을 받은 주치의가 달려와 가래를 뺐다.
 다행히 다음날 새벽 의식을 회복한 김 추기경은 비서 수녀를 보고 활짝 웃으며 "여보게, 나 부활했어"하고 농담을 던졌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도 참으로 의연했다.
 기자와 함께 병실로의 추억여행에 동행한 김 추기경 주치의 김영균(프란치스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추기경님은 `힘들지 않다. 준비가 됐다`고 말씀하시며 선종 순간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회고했다. 당시 김 추기경의 임종을 지켜보고 사망을 확인했던 김 교수는 "죽음을 의연하게 맞을 준비가 된 분이라 그런지 삶의 마지막 순간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병세가 악화되면서 수시로 가래를 뽑아야 했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손사래를 치면서도 치료 후에는 항상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따뜻한 분"이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김 교수는 "돌이켜 생각하면 당신은 떠날 준비가 됐는데 왜 자꾸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려 하느냐는 뜻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김 추기경을 향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났다. 김 교수에게도 김 추기경과의 인연은 여전히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 김 추기경 선종 후에도 한동안 자신도 모르게 6010호 병실 쪽으로 발길을 옮기곤 했을 정도다.
 1년 전 바로 그날 오후 김 추기경 주치의 정인식(루카, 소화기내과) 교수와 김영균 교수가 긴급 호출을 받고 6010호 병실로 달려가던 긴박한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몇 분 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총대리 염수정 주교, 사무처장 안병철 신부, 명동주교좌본당 주임 박신언 몬시뇰도 서둘러 병실로 달려왔다.
 10여 분 후 침통한 표정으로 병실에서 나온 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가 병실 앞 복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품 안에서 선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안센터 주천기(요셉) 교수도 긴급호출을 받았다. 후배 전문의 3명과 함께 급히 6010호로 올라갔다. 안구적출을 위한 수술 세트가 도착하고 주 교수는 잠시 기도를 한 뒤 직접 집도에 들어갔다. 수술은 40분 만에 끝났다. 안구를 적출한 자리에 의안(義眼)을 채워 넣었다. 주 교수는 수술하는 동안 계속 주의 기도를 외웠다.
 김 추기경의 각막 기증으로 두 사람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하지만 추기경이 남긴 `사랑과 나눔의 빛`은 수백수천만 명이 영혼의 눈을 다시 뜨게 만들었다.
 김 추기경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었을까. 취재를 마친 후에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비록 육신은 이미 떠났지만 추기경이 남긴 사랑의 자취는 여전히 곳곳에 온기를 품은 채 남아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김 추기경 병실을 소박한 기념관으로 만들어 영구보존하고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글=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1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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