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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용인 성직자 묘역을 가다] 김수환 추기경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임은 가셨지만 사람들 마음엔 영원히 남아 …, 추위도 마다 않고 찾아온 추모객들, 여전히 곁에 있는 듯한 추억 느끼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자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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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5일 용인 성직자 묘역을 찾은 서울 오금동본당 연령회원들이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에 엎드린채 봉분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 서울 오금동본당 연령회원들이 위령기도를 바치고 있다.
 

 
▲ 가족과 함께 성직자 묘역을 찾은 한 어린이가 추기경의 묘소 앞에 무릎을 꿇고 국화꽃을 바치고 있다.

2009년 2월 16일, 코끝이 시렸다. 입춘이 지난 후에도 불어오는 한풍 탓도 있었겠지만 한국교회의 영적지도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을 잃은 슬픔 탓이 더 컸다. 추운 날씨에도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기 위해 길게 늘어섰던 행렬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일 년이 지났다. 선종 1주기를 앞두고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을 찾은 2월 5일, 날씨는 여전히 코끝이 시리도록 추웠다. 일 년 전과 같은 긴 행렬은 없었지만 김 추기경을 잊지 못하고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 찾아간 용인공원묘지는 인기척이 없었다. 영하의 날씨와 세찬바람까지 더해져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 추기경 묘소 주변 곳곳에는 온기가 배어 있었다. 코팅된 흰 종이에 정성스럽게 적어 놓은 시 ‘임의 향기’, 짤막한 편지 등에는 김 추기경을 잊지 않은 이들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누군가 놓고 간 귤도 얼어 있었지만 추기경을 향한 마음이 향긋하게 풍기는 듯했다.

오전 내내 묘소를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덕분에 기자는 용인공원묘지가 한눈에 보이는 무등치 산자락에 앉아 조용히 김 추기경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들과 그동안의 실천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묘소에 올라가니 인기척이 났다.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함께 연도를 바치고 있었다. 연도가 끝나자 봉분에 손을 얹고 제각각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물어보니 서울 오금동본당 연령회원들이었다. 기일을 앞두고 마음을 모아 김 추기경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추기경께 이끌어달라고 기도했다.

지난해 2월 이후, 1년 만에 이곳을 다시 방문했다는 이태옥(율리아·57)씨는 “일 년 동안 추기경께서 남기신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다”며 “오늘 이렇게 꽃다발이 많이 놓여 있어 여전히 추기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추기경에 대한 애상은 공간의 벽을 뛰어 넘었다. 오금동본당 신자들이 떠나고 나니 미국 텍사스에서 온 이일신(벨라뎃다·65)씨가 언니와 조카가족과 함께 왔다. 한국에 나와 부모님 묘소를 찾았다가 이곳에 들렀다는 이 씨는 “추기경 선종 당시 미국에 있어 추모행렬과 장례미사를 TV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는데 직접 추기경 묘소에 와 보니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훔쳤다.

부부끼리 혹은 홀로 찾아 온 이들도 많았다. 김 추기경 선종 1주기를 맞아 남편과 함께 방문한 강길려(클라우디아·47·의정부 신곡1동)씨는 “김 추기경은 말로 다 못하게 훌륭한 삶을 사셨고 우리에게 교훈도 많이 남기셨다”며 “주님나라에 가셨으니 거기서도 행복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선종일 당일에는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해 조용히 묵상하고 싶어 왔다는 신자도 있었다. “추기경처럼 살아가며 하느님께 다가가고 싶다”고 말한 그는 모두가 떠난 묘소 앞에서 큰 절을 올리고 오래도록 추기경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추모 행렬은 선종 후 1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서울 노원본당은 2월 20일 이곳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할 계획이다. 추모미사를 위해 미리 답사를 나온 본당 교육분과장 강경희(카타리나·50) 씨는 “본당 신자 중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모두 추기경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 매일 추기경의 상본을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묘소에 와서 보니 아직도 우리 곁에 계신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 추기경 묘소에는 하루에도 많은 이들이 잊지 않고 찾아온다. 용인공원묘지 관리소에 따르면 최근의 혹한기로 추모객들이 줄었었지만 추모기간과 구정이 다가오면서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 날씨가 풀렸을 때에는 평일에도 50여 명이 찾아올 정도며, 주말과 주일에는 100여 명의 추모객이 묘소를 방문한다고 전했다.

각자 형편도 다르고 사정도 다르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마음 속에 여전히 김 추기경이 함께하고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무등치 산자락을 내려오는 길은 칼날 같은 바람에 여전히 코끝이 시렸다. 하지만 김 추기경을 찾아 온 사람들을 만나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라는 말 한마디가 차가워진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어 넣었다.



가톨릭신문  201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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