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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 신부의 청소년 사목 이야기] 내가 받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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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본당 중고등학생 사목부로 이동해 혜화동 주교관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일이다. 이사를 온 지 3개월이 되어 가던 때였는데 본당에서는 신자들과 함께 드리던 매일 미사를 이곳에서는 혼자서 드려야 했다. 미사를 재미로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미사를 드리는 일은 정말 힘이 들었다.

 많은 신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그들 안에 머무시는 성령을 느끼면서 드리는 미사와는 달리 주교관의 작은 경당에서 혼자서 드리는 미사는 정말 고독했다. 때로는 미사 중에 복음 후 묵상을 하다가 1시간을 졸기도 했다.

 그때 나는 이런 개인적 어려움과 많은 사목적 난관에 부딪쳐 있었다. 주변에는 청소년 사목을 지원하는 사람도 없었고 기도를 해주는 공동체 신자들도 없었다. 게다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은 요구와 비난만을 할 뿐이었다. 당시 회관에는 수녀님과 사무원 연합회 자원봉사 교사 5~8명이 전부였다.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나가야 했다. 나는 벗어날 수만 있다면 책임자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좌절과 두려움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그날도 혼자 주교관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복음 후 묵상을 하면서 나는 상념에 잠겼다. 많은 걱정과 계획 등으로 혼란 가운데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사제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는지 그리고 청소년들을 어떻게 교회 일꾼으로 양성해낼 수 있는지 재정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지…. 고민은 더욱 깊어갔고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내 눈앞에 어떤 영상이 보였다. 그것이 꿈이었는지 영상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 눈 앞에는 분명 수천 수만 명의 청소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제대를 에워싸고 있었고 나와 함께 커다란 함성으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왜 내가 이곳에 와 있는지…. 나는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주님 바로 이것을 위해서 당신께서는 저를 부르셨군요. 제가 받은 사명이 바로 이것이군요. 당신의 십자가 아래로 수많은 청소년을 무릎 꿇게 하겠습니다. 당신께 수많은 청소년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그 이후 나는 혼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을 기쁘게 여기게 되었다. 이제 나의 미사는 나 혼자만의 미사가 아니라 수많은 청소년과 함께 드리는 미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미사 드리면서중얼거린다.

  주님께서 청소년 여러분과 함께.

 그러면 수천수만의 청소년들이 나에게 화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또한 사제와 함께.
 
 나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인 청소년을 위한 성소에 감사드린다. 이것은 너무나 특별한 은총이기 때문이다. 이 선물은 청소년과 함께 하고 있거나 떨어져 있거나 계속되고 있다. 교구의 청소년사목 책임을 떠나 있는 지금도 나는 청소년의 구원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명은 한 순간의 직책이나 자리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 십자가 발치 아래로 끝이 안 보이도록 많은 청소년을 모아들이겠다고 주님께 한 약속을 일생을 통해 이루려고 나는 노력하고 있다.
 
 요즘 나는 청소년들과 완전히 단절된 마닐라의 EAPI에 머물면서 혼자서 미사를 드리며 조용히 외친다.

  The Lord be with you.

  And also with you.

 그리고 혼자서 빙긋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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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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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너희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을 번성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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