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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 신부의 청소년 사목 이야기] 가브리엘라가 초대한 하느님께로 가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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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다. 병자성사가 난 줄 알고 서둘러 옷을 입고 나가보니 고3인 한 친구가 울면서 서 있었다. 상황이 심각한 듯해서 우선 사제관 응접실로 들어오라고 하고 물 한 컵을 줬다. 우울한 얼굴로 마주앉은 아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성적표를 받았는데 너무 떨어져서… 두려워요. 오늘 선생님 눈빛이 무서웠어요. 선생님이 나를 포기할까 봐 너무 두려워요…. 나보다 성적이 좋은 친한 친구를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요. 그 친구가 아파서 병문안을 갔는데 그 아이가 계속 병원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계속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오면 그 친구는 공부를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혀요. 나는 나쁜 아이에요. 용서받지 못 할 것 같아요….
 
 그 친구의 이야기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작은 십자가를 건네줬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 그 친구는 편지 한 통을 내게 전해줬다.
 
 신부님께. 아주 행복한 꿈을 꾸고 난 것 같아요. 꿈길을 걸어오면서 저에게 이렇게 큰 행복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어요. 오늘 처음으로 자신감 이란 친구를 만났어요. 아마 제 마음에 있었나 봐요…. 용서받지 못할 것만 같던 제 죄도 이제는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크신데 제가 그 동안 그 사랑을 얼마나 작게만 보아 왔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것이 제 신앙의 깊이였는지 모르겠어요. 이젠 친구를 경쟁자가 아닌 그저 친구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렇게 노력할 거예요. 이제 저에게 주어진 그릇을 충실히 채워갈래요. 꼭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제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게 말이에요.
 
 그 친구의 편지를 읽고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잠도 자지 못한 채 함께 아파한 것은 한 사제인 나인데 이 아이는 누구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 감사는 하느님께 드리고 있지 않은가? 하느님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고생은 제가 다하고 나니까 영광만 당신이 받으시는군요. 편지를 읽는 동안 내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아이와 실제로 대면한 것은 한 사제였지만 그 친구는 그 너머의 존재를 감지하고 깨달았다. 그만큼 하느님을 가까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이렇듯 청소년은 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또는 어떤 신앙의 분위기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동시에 청소년들의 이런 시선은 사제인 나를 변화시킨다. 내가 하는 일과 사목의 의미를 통해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며 나를 변화시킨다.
 
 요즘도 나는 나를 변화시키는 천사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죄와 고민 갈등과 아름다운 꿈을 통해 내게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부족하고 죄인인 나로 하여금 예수께 더 가까이 가도록 끊임없이 초대한다.
 
 청소년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건너게 하는 아주 짧은 다리(Bridge)다.

조재연 신부 홈페이지: http://www.frcho.net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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