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조재연 신부의 청소년 사목 이야기]빼빼로 데이의 추억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지난 11월11일 나는 정말 뜻하지 않은 만남을 했다. 시간은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시흥동본당에서 청소년 담당 신부로 있을 때였다. 그곳 주일학교 고등학생들은 4분5열로 갈라져 있었다.내 관심은 분열돼 있는 그 친구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에게 학년별 MT를 가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청소년 친구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분열돼 있던 친구들은 MT를 원하면서도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 함께 가면 가지 않겠다는 뜻을 비췄다. 그래서 나는 각 그룹의 일명 짱이라 불리는 리더들을 조용히 사제관으로 불렀다. 그리고 어렵게 만든 MT인데 너희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고 마음으로 그들에게 호소했다. 청소년들은 자기 그룹의 리더인 짱에 의해 당연히 이끌려 왔다 .
 우리는 40여명의 친구들과 함께 법원리본당 갈곡리공소로 출발했다. 하지만 버스에서부터 그들은 당연히 끼리끼리였다. 서로 말도 나누지 않았다. 도착 후 폐쇄적이었던 친구들을 섞어 조를 나누어 한 놀이들은 서로의 얼음짱을 깨게 했고 큰 선물이 걸린 조별 게임을 통해 그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게 됐다. 장기 자랑에서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노래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밤이 가까이 오자 짧은 떼제기도를 한 뒤 촛불을 몇 개 켜 둔 아름다운 분위기에서 나는 청소년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우리가 친구인데 오랫동안 서로 미워하고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지내보니까 우리 모두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나 바람을 조별로 나눠보자.

 조별 나눔이 시작됐고 몇몇 친구들이 그동안 아팠던 것을 진솔하게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들은 울면서 자신의 내면을 다른 친구들에게 표현했는데 그 눈물은 아이들을 하나로 묶어줬다. 마무리로 떼제기도를 할 때는 성령께서 그 어떤 때보다 감동적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느꼈다. 그날 우리는 새벽까지 함께 노래하며 갈곡리공소 주변을 거닐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러 걸어가며 나는 맨앞에서 고해성사를 줬다. 아름다운 논길을 걸으면서 거의 모든 친구들이 고해성사를 드리러 앞자리로 앞자리로 걸어나왔다. 미사 후에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신부님 저희가 10년 후 오늘 신부님이 어디 계시든지 찾아 가겠습니다. 그 친구는 아마도 거룩한 변모 때의 베드로처럼 자신들의 그 변화에 대해서 기억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05년 10월 1일. 나는 마닐라에 머물면서 공부하고 있었고 물론 그들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청소년의 약속은 때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날 저녁 미사 때 홀로 그들을 기억했다. 그런데 10월 마지막 주간에 나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신부님 기억하시나요? 11월11일 빼빼로 데이에 저희가 찾아가겠다던 말을 말입니다. 저희는 매년 만날 때마다 이제 3년 2년 남았다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아뿔싸! 내가 날짜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11월11일. 그때 마침 잠시 국내에 들어와 있던 내게 그들은 빼빼로를 들고 찾아왔고 우리는 함께 미사를 드렸다. 이미 그들의 1/3이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데리고 왔다. 가정을 이룬 아이들을 보며 나는 다시 깨달았다. 청소년 사목은 바로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마음을 다해 씨를 뿌리면 10년 혹은 20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들의 삶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얘들아 나는 너희가 너무 고맙단다. 왜냐하면 씨앗이 어떻게 열매 맺는지를 내게 보여주었어. 비록 너희 가운데 혼인조당에 있는 친구 냉담하고 있는 친구가 있지만 너무 걱정 말아라. 신부님이 A/S 해줄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6-01-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9

시편 59장 17절
저는 당신의 힘을 노래하오리다. 아침에 당신의 자애에 환호하오리다. 당신께서 저에게 성채가, 제 곤경의 날에 피신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