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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9

물적 가난보다 무지·결핍이 더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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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새해를 맞아서 그동안 밀려 있었던 쉐벳이라는 공소에 성당터를 확보하는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펜스를 쳐본 경험이 없는데다 저만 바라보고 있는 딩카 청년들을 데리고 일을 하려니 난감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가시덤불과 잔목을 자르고 청소를 하며 성당부지를 확인하고, 돌과 모래를 캐와 자재를 마련한 다음 드디어 지지대를 세우기 위해 시멘트를 섞는 작업을 할 즈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예민해 졌을 뿐만 아니라, 말을 알아듣지 못해 엉뚱하게 일을 하는 청년들에게 붕붕 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2010년 새해를 맞아 쉐벳공소에 성당터 확보를 위한 공사를 본격 시작했다.
 

어느 날 40도를 치닫는 불더위 속에서 지지대를 세우는 작업이 점심시간을 넘겨서 끝내게 되었는데도 다른 작업을 마친 청년들은 그늘 속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에 답답한 마음이 들어 일을 마치자마자 일을 끝내지 못한 다른 형제들을 배려해서 형제애를 발휘해 달라고 꾸짖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제 옆에서 조그만 소년 둘이 사소하게 다투더니 급기야 싸움으로 번졌고 그래서 싸우지 말라고 타이르고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장소를 옮긴 소년들이 다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싸우지 말란 말야!” 이번에는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리곤 식사 전 기도를 하려하는데 싸우던 소년 중 키 큰 아이가 조그만 아이를 때리기 위해 막대기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면서 달려가 그 소년을 말린다는 생각으로 두 손으로 밀어 냈는데, 아뿔사! 제가 그 소년보다 무겁고 힘이 세다는 것을 깜빡 했습니다. 소년은 1m정도 붕 나르더니 땅에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고, 소년을 돌보려 다가가 괜찮냐고 물어볼 때였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후두두두”하는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소년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십여 명의 가족과 친지들이 손에 막대기든, 쇳덩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저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저에게 꾸중 듣던 청년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사람들을 막고 실랑이를 하면서 신부님 빨리 자리를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신부님을 때리러 왔으니까 여기 있으면 신부님은 맞아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었습니다. 청년들이 막아서자 더욱 흥분한 주민들은 저를 향해 막대기와 쇳덩이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공소 성당으로 들어가 상황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내가 지금 양떼 속에 있는 건지, 이리떼 속에 있는지 당혹스러웠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원인이나 이유를 듣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전에 몽둥이와 폭력이 먼저 휘둘려지는 세상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소년을 밀쳤는지보다는 가족이나 친척이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면 이유야 어찌되었든 동태복수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들의 관행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가 막혔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물질적 가난보다 더 시급한 영적인 ‘무지’와 ‘결핍’이라는 가난이 더 큰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 대한 분노는 연민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메마름과 황량함을 얼마나 불쌍하게 보시는지를 말이죠. 세상의 폭력성 때문에 희생되신 예수님이셨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아니 앞으로도 당신의 하느님 나라가 폭행을 당하시는 그곳으로 양을 이리떼 속으로 보내듯 당신의 사도들을 끊임없이 파견하시고,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정의를 가장한 권력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이 진정한 화해와 정의, 평화의 디딤돌임을 선포하도록 말이죠. 수단 이라는 메마른 땅에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제비를 통해 이미 손에 잡힐 듯 와있는 봄을 깨닫게 해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많은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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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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