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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3. 쉐벳 교전 (3) - 목마른 밤, 그리고 탈출

밤새 갈증·두려움에 떨다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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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사태고 지금은 비상상황이니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한국에는 몇 분에게만 이라도 상황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니 두시간 간격으로 무전을 교신하고 내일 상황을 봐서 탈출하겠다고 하고는 무전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총소리가 잦아들자 긴장이 풀렸는지 목이 마르기 시작했지만, 성당에 문을 닫을 때 이곳에 물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지금 물을 뜨러 가는 것은 미친 짓이고, 그나저나 신학생들도 목이 마를 텐데… 세라믹 정수기에 담겨있던 물은 신학생들이 이미 깨끗하게 마셔버린 상태였고, 비상물통도 비어있었습니다.

언제 이곳을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목마름을 어떻게 견디어야 할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기억을 더듬어 혼자 더듬더듬 어딘가 있을 물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몇 주 전에 담아놓은 조그만 PT병 하나와 주전자에서 약간의 물이 남아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신학생들과 돌려가며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물이 그리 깨끗한 물이 아니어서인지 물을 마시니 갈증이 더 났습니다.

목마름… 그것은 버려진 고립과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버려진 처참한 상황에서의 간곡한 절규이기도 했으니까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성소였던 예수님의 목마름, 물마저 마실 수 없는 가난함의 절규였던 목마름, 우리에게 갈증을 느끼시는 예수님의 목마름에 비하면, 지금 나의 목마름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곤 내일 아침이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 안심시키고 신학생들의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잠을 자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밤새 간헐적인 교전은 계속되었고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시계를 보다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새소리와 함께 푸르슴하게 날이 밝아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교전이 재개되었습니다.

귀가 멍멍하게 들리는 총소리 속에서 그나마 어제까지만 해도 주일미사에 몇 명이나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던 기대가 산산조각났습니다. 총을 들고 군인들 진영으로 진격하는 목동들의 움직임들이 창문을 통해서 보였고 군인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총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총을 맞고 쓰러진 군인을 후송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밤새 잠을 설친 피곤함과 목마름에 지쳐 까무룩 잠이 들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창문이 벌컥 열리면서, 군인 한 명이 물이 철철 넘쳐나는 물통 하나를 들이밀었습니다.

감격이었습니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답례로 저희들은 과자와 사탕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천사가 떠다준 물을 마시고 기운을 얻어 알렉스 신부와 무전교신을 하면서 상황이 호전되면 바로 탈출 할 테니 약속된 장소로 마중 나올 것을 알렸습니다.

정오가 되어 총성이 멈추자 때를 놓칠세라 신학생들과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나가자! 그리곤 주위 군인들에게 우리의 탈출을 알리고 알려주는 경로를 따라 마을을 우회해서 빠져나왔습니다.


 
▲ 밤새 부족과 군인들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현지 주민의 모습.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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