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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4. 쉐벳 교전 (4) - 머나먼 평화의 길

성당 주위 가옥들 잿더미로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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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총을 들고 다니는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목동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을 보자 아픈 마음에 한숨만 나왔습니다. 단지 복수를 위한 집념으로 아주 오래된 구식 총을 들고 군인들을 향해 죽음의 전장으로 전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저희들이 나오자 드문드문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죽은 이야기와 얼마나 교전이 더 계속될지, 누가 이 싸움을 진정시킬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알렉스 신부가 차를 몰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현기증 나는 교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교전은 그 후로 이틀 더 계속되었습니다. 남수단 수도인 쥬바에서 2개대대가 파견된 다음에야 전투가 멈추었고 군인 9명에 민간인 17명이 희생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상황이 진정국면에 들었다는 소식에 다시 신학생들을 데리고 다시 쉐벳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불타버린 딩카족의 투클들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에 경악했습니다. 지붕은 다 타버리고 새카맣게 그을린 벽, 흔적만 남아있는 집터가 전부였습니다. 이사 갈 때 머리에 한두 보따리면 다 되는 가난한 살림살이마저도 잿더미가 된 현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라진 유령마을 같이 되어버린 말 그대로 쑥대밭이었습니다. 길가에 있는 상점들은 문이 뜯겨 물건들을 모두 도둑맞아 텅 비어 있었고 낙심한 주인만 허탈하게 상점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단 삼사일 만에 그나마 활기 있게 발전하던 쉐벳은 복수의 화마에 휩쓸려 처참하게 부서졌습니다. 마을을 점령한 군인들은 빈집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약탈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다행히 공소 성당은 약탈을 면했습니다. 신학생들을 위해 임시로 쳤던 텐트 두동이 없어졌었지만, 군인들이 약탈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었다며 저희들이 돌아오자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곤 자신들은 학교와 병원 성당은 손 하나 안 댄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성당 주위의 모든 집들은 이미 불타버렸고 떨어진 탄피들이 그동안 얼마나 교전이 치열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 현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끔찍하고 잔인한 야만성의 결과 입니다. 그 어떠한 사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전쟁을 인간은 스스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합니다. 불가피한 전쟁은 없다고 천명하는 교회를 온갖 스캔들로 들추며 쥐어흔드는 세상의 사악함이 아직 우리의 불행한 현재이기도 합니다.

교전의 발단은 ‘소‘를 둘러싼 씨족간의 분쟁이었습니다. 유목민인 딩카족에겐 소는 ‘전부’입니다. 그 유일한 삶과 부의 근원인 소를 서로 뺏고 지키는 과정에서 더욱 ‘강한 무기’는 필요충분 조건이었고, 이웃 씨족으로부터 훔쳐온(!) 소를 ‘지키기’ 위해 압수당한 무기를 탈취하려다 군인들의 경고사격 없는 진압사격에 공교롭게 추장까지 희생되면서 사건은 불덩이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전통에 따른 동태복수의 전투를 통해 남은 것은 불타버린 집과 죽어버린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교전을 통해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이 깊은 상처만 남았습니다. 정의가 없는 곳에 평화는 머물 수 없고, 평화가 없는 곳에 화해라는 말은 무의할 뿐이었습니다.


 
▲ 쉐벳 교전이 끝난 후 마을 주민들이 집을 다시 짓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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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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