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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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6. 성지가지십자가에 깊은 감동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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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발의 예수님

성주간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에 참여하는 전례의 절정이요, 부활신앙의 고갱으로 달려가는 은총의 성주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지난 몇 달간의 작업으로 지쳐있었고, 펜스를 설치하는 작업이 마치 가시덤불 속에서 십자가를 질질 끌고 온 느낌이었으니 이제 못 박히는 일만 남았군 이라고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사순절 동안 매주 금요일 3시 뜨겁게 달궈진 양철지붕 공소건물 안에서 십자가의 길을 할 때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과 마음을 잊지 못하는지라, 신앙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줄 절호의 시기임을 벼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수난 성지주일을 준비하며 소신학생들과 딩카말로 수난복음을 연습하고 성지가지로 야자수 잎사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수난 행렬이 시작되기 전, 성지가지로 야자수 잎을 나누어주자마자 미사에 참례한 아이들은 갑자기 분주해졌습니다. 야자수를 자기 마음대로 벅벅 찢어대고 있었던 것이었죠. 어휴… 보다 못한 제가 이제 그만 찢고 가만히 들고 있으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성지가지를 번쩍 치켜들었는데 그 모양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야자 잎을 찢어서 각자 자기 자신의 고유한 십자가 모양을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지고 가야할 십자가처럼, 아이들이 눈 깜짝할 시간에 만들어낸 성지가지 십자가야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사를 마치면서 이제 성삼일 전례를 할 테니 꼭 참례하라고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성목요일 만찬미사의 세족례, 꼬마들까지 합쳐서 열댓 명의 아이들이 참례했습니다. 미리 선정할 필요가 없이 미사에 참례한 모든 아이들의 발을 모두 닦아 주었습니다. 맨발로 얇은 슬리퍼만 신고 다니는 아이들의 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제자들의 검은 발을 닦아주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삶은 바로 이들의 더럽고 부끄러우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발을 닦아주는 겸손한 섬김임을 아이들의 발을 뽀드득 뽀드득 닦아주며 헤아리고 또 헤아렸습니다. 세족례에 처음 참례한 아이들의 눈빛은 ‘놀라움’이었습니다. 아마도 이곳 공소에서는 처음 이루어진 성주간 전례였을 테니까요… 성금요일의 십자가 경배 때도 열댓 명의 아이들만 참례했지만 이젠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십자가 수난에 함께 참여했던 제자들은 많지 않으셨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토요일 전례는 저녁 8시에 성야미사를 할 테니 꼭 나오거라! 신신 당부를 했더니… 놀랍게도 토요일 ‘아침’ 8시에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몰려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희들 지금 미사 참례하러왔니? 네!… 내가 저녁 8시라고 했잖아. 껄껄껄 저는 한바탕 웃었지만, 아이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예쁩니다.

아직은 신부님과 함께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리둥절한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이들이 좋아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검은 발과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시는 하느님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임을 헤아립니다. 그렇게 부활절 미사를 마치고 예수님의 부활은 국경도 피부색도 존재하지 않는 전 인류의 구원사업임을 뜨겁게 감사드렸습니다.
 

 
▲ 자신들이 지고 가야할 십자가처럼, 아이들이 눈 깜짝할 시간에 성지가지로 사용할 야자 잎을 찢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보인 수단의 아이들.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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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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