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7. 이웃 씨족 약탈로 사상자 4명 발생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수단에서 이웃이 된다는 것

부활절을 보내고 며칠 지난 후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아침미사를 마치고 나서자 “신부님, 오늘 아침 총소리 들으셨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총소리라니?

오늘 새벽에 아강그리알 마을 근처까지 이웃 씨족이 쳐들어와 총을 쏘고 소를 훔쳐갔습니다. 총을 쏘았다는 말은 사람이 다쳤다는 말이었습니다. 몇 명이나 다쳤는데?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죽고 두 명은 크게 다쳤답니다. 또다시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당 옆의 진료소로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고, 간호사를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벌써 총상을 입은 한 명은 쉐벳의 진료소로 보냈다고 합니다. 잠시 후 아주머니를 안고 진료소로 들어오는 오토바이 한 대가 있었습니다. 다가가 보니 이미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고 티셔츠를 둘러 지혈을 해서 피는 멎었지만 아주머니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간호사가 서둘러 침대를 마련해 기본적인 치료를 할 때 저는 맥박을 재어보았습니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맥박은 턱없이 낮았습니다. 간호사는 피를 많이 흘려서 수혈을 해야 하는데 여기는 의사도 없고 장비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빨리 쉐벳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본당 차는 공소방문을 나가있었고, 진료소 차는 운전사가 없었습니다. 내가 운전할 테니 자동차 열쇠를 주세요 하고는 또다시 뛰어가서 자동차를 몰고 진료소로 들어왔습니다. 이동이 가능할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맥박을 재어보니 희미해지던 맥박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간호사는 심폐 소생술을 시작했고 혹시 수동 호흡장치로 호흡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해서 다시 사제관으로 뛰어가 헐떡거리며 앰불백을 가져왔을 때는 “신부님, 이미 늦었습니다”라는 간호사의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머리까지 담요로 포근하게 덮인 아주머니만 침대에 누워있을 뿐이었습니다. 주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아무도 울지 않았습니다. 애타고 서글픈 마음에 하늘을 바라보고 깊은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주위의 신자들에게 기도하자고 청하고는 주모송을 바치고 이 불쌍하고 가련한 영혼을 생명의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거두어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아주머니를 집으로 모시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걸자, 염소 새끼를 가슴에 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달려오는 어린 아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에서 내려 눈물을 한가득 흘리며 다가오는 아이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아주머니를 위한 마지막 배웅을 출발했습니다. 길도 없는 가시덤불을 헤치며 한참을 달려가서 일행과 아주머니를 내려놓자 어린 아들은 집 옆의 나무 밑에서 뒹굴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수단에서 이웃이 된다는 것, 이웃으로 산다는 것은 머리에 깊숙이 박히는 가시관을 쓰고 심장을 쪼개는 것 같은 아픔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정의가 존재하지 못하는 불의한 현실은 끊임없는 복수의 악순환을 낳게 되기에, 용서와 화해와 평화를 가르쳐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저에게 다가온 사건은 이들과 함께 ‘불의한 폭력’이라는 십자가에 함께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분의 못 박힘으로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셨음을 먼저 헤아려야 했습니다.
 

 
▲ 아이를 품에 안은 수단 어머니의 고된 표정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수단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7-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8

시편 34장 6절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에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