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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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8. 새로운 만남을 향하여!

사랑하는 이들은 다시 만날 걸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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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에서의 지친 심신을 충전하기 위해 피정을 떠났다가, 수단으로부터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빨리 연락을 취해달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메일을 확인하고 전화를 하기까지 다급해진 마음에 손가락이 떨려왔습니다.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위독하다는… 이제는 아버지를 보내드릴 준비를 해야겠다는 형님의 떨리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신부님께서 돌아올 때까지 버텨야 할 텐데… 하시며 자꾸만 나약해지시던 아버지의 슬픈 음성이 떠올라 마음은 자꾸만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지만, 가녀린 영혼을 사제의 손으로 하느님께 보내드리듯 이제는 저의 아버지를 하느님께 보내드려야 할 때임을 헤아렸습니다.

창백해진 안색과 황달기가 오른 눈으로 급하게 달려오는 저를 본 아버지의 눈에 촉촉한 눈망울이 맺혔습니다. 아버지… 제가 돌아올 때까지 잘 버티셨어요. 제가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아버지는 제 손을 꼭 잡고 한동안 말씀을 하지 않으시다가 수단에 대한 몇몇 이야기를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누구 아들이에요? 그동안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을 재산으로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들이 선교사제가 되었으니… 그렇게 아버지도 아들을 따라 선교사가 되어 계셨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한창 피던 때 병실 침대 누우신 아버지와 함께 열흘 동안 미사를 봉헌하고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작년에 떠나신 큰형님을 가슴에 묻고 같은 병으로 형님을 따라가신 아버지를 찔레꽃 향기에 감싸 보내드리는 것은 생각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임신부로 첫 본당을 나가 집에 자주 찾아오지 못하자 두 분이 미사 시작 후 몰래 들어오셔서 주일미사에 참례하시고 혹 누가 될까 공지사항 시간에 몰래 손 붙잡고 나가시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수단에 선교사제로 지원한 사실을 힘들게 말씀드리자 아무 말 없이 손수건으로 눈물만 닦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가슴속에 담아야 했습니다. 비록 열흘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임종을 지킬 수 있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소식을 듣고도 교통수단이 없었던 옛날 선교사에 비하면 저는 아주 호강을 누린 것이니까요… 장례를 마치고, 다시 수단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면서 이제는 삶의 터전이 마치 수단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단의 룸벡 공항에 도착하자, 교구장이신 마쫄라리 주교님께서 마중을 나와 계셨습니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안아주셨습니다. 아강그리알 미션에 돌아오자 많은 신자들이 길에 마중 나와 환영해 주었고, 며칠이 지난 후 한 아주머니는 저의 소식을 듣고 일부러 수십 리를 걸어와 인사를 하러 찾아와 주었습니다.

세상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같은 곳입니다.

수단에 선교사로 있는 동안 두 명의 가족을 하느님께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친형님 같았던 이태석 신부님도 하느님께로 보내드렸습니다. 이별은 슬픈 일이지만, 지상의 거처가 무너진 후 하늘나라의 새 거처에 머무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언젠가는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은 언젠가는 또다시 만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함께 나누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게 되겠지요.
 

 
▲ 고국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다시 수단으로 돌아온 한만삼 신부가 이곳 가족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한 신부는 이젠 삶의 터전이 마치 수단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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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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