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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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9. 기쁨의 자원봉사?

가난한 주민들에 자원봉사 강요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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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가 시작되어 하느님께서 비를 주시니, 땅에는 온갖 생명들이 아름다운 초원처럼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초원의 현실은 인간이 먹을 씨앗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세상의 온갖 가라지도 함께 자라니 행복하고도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생명의 ‘비’를 주시지만 인간은 세상 이라는 밭에서 이마에 땀을 흘려 잡초를 뽑아야 아름다운 밭을 가꿀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씨앗을 뿌린 땅콩 밭과 수수밭이 창세기의 가시들판처럼 뒤덮이는 풀들을 보면서 또다시 고민은 시작됩니다. 이풀을 어떻게 뽑아야 할까… 신부 둘이서 그 넓은 밭의 제초작업을 할 수 없으니 성모회나 청년들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수단에서는 그 모든 일이 생각대로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아강그리알에 처음 도착한 다음부터 신자들과의 마찰은 자원봉사에 대한 개념 이해의 차이였습니다. 성당에서 공동체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농사를 지으니까 도와줄 것을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몰려온 사람들은 우리가 당신을 위해 일을 하면 신부님들은 저희들을 위해서 무엇을 주실 것입니까? 라는 질문도 가져왔습니다.

무엇을 준다니?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봉사를 하는데 무엇을 달라니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될 테니 걱정 말아요! 신부님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지 알지 않습니까? 당신은 우리의 아부나(이때만 ‘신부’가 ‘친아버지’의 의미가 됩니다)니까 우리에게 먹을 것이나 돈을 주십시오!

처음에는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었다가… 한숨이 나왔습니다. 봉사와 희생의 의미와 그로인한 기쁨을,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돕는 삶과 행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아름다운’것인지를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힘든 노동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이었습니다. 한번도 ‘봉사’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평화를 위해선 선함과 아름다움을 먼저 사랑하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어야 하듯, 현실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만을 강요할 수도 없었습니다. 봉사는 자발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들과 제초작업을 두고 ‘주고받는’ 흥정을 합니다. 비참한 마음이었지만, 어차피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이니, 사회복지 사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때때로 일을 시작할 때와는 달리 일을 마치고 나서 돈을 더 달라고 다른 소리를 할 때도 있었고, 일을 조금 남겨놓고 돈을 더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달래가면서 일을 마무리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봉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진 사람이, 모든 것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남는 것을 주는 자선이나 자기의 ‘만족’이나 ‘보상’을 위한 활동이 봉사인가? 그렇게 되면 봉사는 여가 활동이나 취미생활이 될 뿐입니다. 봉사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나에게 값진 향유 옥합을 깨트려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봉헌처럼 말이죠.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깨트린 그녀는 아까와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듯 주님을 향한 사랑이 봉사의 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주님을 향한 사랑이 봉사의 샘이 되어야 하지만 아직 이들에게 봉사의 참 의미를 전해주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사진은 제초작업 중인 주민들.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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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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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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