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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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16) 하느님을 닮은 인간

하느님 닮은 인간은 신적 능력도 부여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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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에 다 있다

책을 많이 쓰다보면, 책을 읽는 요령도 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서문을 또박또박 읽는다. 그 다음엔 후기와 목차를 읽는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본문을 읽는다.

왜? 적어도 읽히는 책을 쓰려는 의도를 지닌 저자라면 책 ‘서문’에 핵심 의도를 복선처럼 깔아놓고 ‘후기’에서 혹시 독자가 놓칠 수 있는 결정적 메시지를 확인삼아 밝혀두는 것이 상도(上途)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책 중의 책이다. 창세기는 그 책의 서문이다. 그러기에 창세기 서문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다’ 있다. 결정적인 주제는 빠짐없이 모조리!

그중 하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창세기의 0순위 주제다.

하느님은 먼저 3일 동안 창조물들을 위한 터전 곧 장(場)을 창조하셨다. 그 다음에 3일 동안 그 터전에 창조물들을 만드셨다.

여기에 창조의 질서가 잘 나타나 있다. 즉 첫째 날은 빛을 만드시어 ‘우주환경’의 터전을 마련하셨고, 둘째 날은 창공과 물을 만들어 ‘생태환경’의 터전을 만드셨고, 셋째 날은 땅과 바다와 식물을 만들어 주거환경의 터전을 만드셨다.

이처럼 모든 터전이 먼저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구체적인 창조 활동에 임하셨다. 그래서 넷째 날에는 우주환경의 창조물(해, 달, 별)을 지어 내셨고, 다섯째 날에는 생태환경의 창조물(새, 물고기)을 지어 내셨으며, 그리고 그 위에 여섯째 날 주거환경의 창조물(생물)을 지어 내셨다.

이렇게 삶의 모든 조건을 갖추신 연후에 마지막으로 최후의 걸작인 인간을 만드신 것이다. 창조의 클라이맥스에 사람의 창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음미할 가치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매일 창조를 마쳤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 표현은 도합 여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창세 1,4.10.12.18.21.25 참조). 하느님은 작품을 만드시는 6일 동안 내내 만족해 하신 것이다.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엿새 날 인간의 창조로 모든 창조 활동을 마감하시면서 “좋았다”라는 표현에 각별히 “참”이라는 부사를 덧붙여 당신이 하신 모든 일에 대해 감탄하기까지 하셨다(창세 1,31 참조).

“참 좋았다” 하신 이 말씀은 오늘날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며 어리석은 비교 게임을 한다. “난 세련되지 못했어. 난 저 사람보다 더 강하지도 못하고 더 아름답지도 못해. 그 사람은 나보다 더 노래를 잘해…” 등등.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는 내가 그분의 걸작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다.

■ 흙의 인간, 입김의 인간

하느님은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의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신다. 그러자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이렇게 해서 생겨난 ‘영혼’이 비로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었다. 흙에서 빚어진 육체가 없어도 인간 생명이라 할 수 없고, 하느님의 입김에서 생겨난 영혼이 없어도 인간 생명이라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영육의 존재다.

성경은 철저하게 육체와 영혼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성경이 ‘몸’을 말할 때도 전체 인간을 나타내는 것이고 ‘영혼’을 말할 때도 전체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통전적(統全的, holistic)인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1서에서 이렇게 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프네우마: pneuma)과 혼(프쉬케: psyche)과 몸(소마: soma)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1테살 5,23).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세 가지가 모두 온전할 때 비로소 한 인간이 온전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 하느님을 닮은 인간

영육의 통일체로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e of God)을 지닌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이것이 인간창조의 본래 취지였다. 여기서는 ‘비슷하게’로 되어 있지만 ‘닮은’이 원뜻에 가깝다. 히브리어에서 ‘닮았다’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데무트’(demut, 영어로는 likeness 또는 resemblance)와 ‘셀렘’(tselem, 영어로는 image)이 있다. ‘데무트’는 겉모습만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긴 ‘형상’을 뜻하고, ‘셀렘’은 ‘본질·속성’이 닮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모상’을 뜻하는 단어로 ‘셀렘’이 사용됐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붕어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속성을 닮았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내면까지 포함하는 인간 실재 전체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독일의 신비 영성가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모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 모상은 그 본체인 것으로부터 직접 존재를 부여받는다. 그것과 하나인 존재를 가지며 그것과 동일한 존재다.”

이처럼 창조주의 모상인 우리는 창조주와 존재를 공유한다. 사람은 누구나 불가침의 존엄성을 지녔다. 여기에는 일절 차별이 없다. 똑똑한 사람이나 바보스런 사람이나, 건장한 사람이나 어딘가 불편한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태어난 생명이나 태어나지 못한 생명이나 모두가 똑같은 존엄성을 지녔다. 모두 안에 하느님의 모상이 있다. 그러기에 인종 차별, 낙태, 착취, 인권 유린 등은 바로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악이라 말할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어 주신 하느님의 업적을 찬미하며 환호한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편 8,5-6).

그렇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모상대로 지어내신 하느님께 늘 감탄하면서, 입으로는 감사와 찬미를 드릴 일이다.

한 가지 더. 하느님을 닮은 우리는 신적 능력 또한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첫 번째가 ‘사랑의 능력’이다. 사랑은 그저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선사된 ‘신적’ 능력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술할 기회가 많으니 확인만 해 두고 넘어가자.

그 두 번째는 ‘창조의 능력’이다. 이는 놀라운 발견이며 사실이다. 인간에게 ‘신적’ 창조능력이 내재되어 있다니!

그런데 이 창조력은 우리가 갖는 꿈과 희망으로 발휘된다. 그러기에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은 모든 인간의 행위 속에 들어 있는 ‘신적인 힘’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는 우리의 꿈속에 신적인 창조력이 깃들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엄청난 얘기다. 우주만상을 창조한 신의 창조력을 인간이 꿈이라는 방식으로 지니고 있다니… 그렇다면 꿈을 가진 자는 이미 신적인 잠재력을 작동시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졸저 「희망의 귀환」 참조)

이를 문화와 연결시키면 어떻게 되는가. 세계에서 가장 큰 미래문제 연구단체인 코펜하겐의 미래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던 롤프 옌센은 이렇게 밝힌다.

“미래는 확실성이 아닌 꿈으로 만들어져 있다. 미래는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꿈속에 존재한다. […] 미래는 꿈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업가는 훌륭한 소설가가 이야기를 상상하듯이 사업의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롤프 옌센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얘기를 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꿈속에 미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멋지다.

이렇듯이 인간 안에는 미래창조의 신적 힘이 내재되어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절망을 선언한 순간에도 희망은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은 실종된 듯할 때에도 항상 우리 삶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희



가톨릭신문  201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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