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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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19) 천지를 진동할 고백,‘그 외아들 우리주님’

‘주님’은 삼라만상 다스리는 권한 지니신 임금 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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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자와 주님

한 달 전쯤 모 방송 ‘땡큐’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예능프로였지만 진행자 차인표의 격조 있는 역할에 기대보자는 심산으로 제의에 수락했다.

허정무 전 국가대표 축구감독, 영화배우 장서희와 어우러져 나눈 살아온 이야기는 훈훈함에 재미를 더했다.

그 중 한 대목. 내가 ‘공주병’과 ‘왕자병’ 예찬을 펼치며, 차인표 진행자에게 물었다.

“차인표씨도 왕자병이 있지요? 있어야 합니다. 그거 좋은 겁니다.”

“아, 예, 당연히 있지요. 근데 왕자병도 왕국 나름입니다.”

“???”

“그러니까, 왕자가 사는 왕국이 얼마나 크냐 하느냐는 거죠. 그 왕국이 나라만했다가, 동네만 했다가, 이제는 집안으로 쪼그라드는 게 문제 아닐까요.”

“하하하, 거 말 되네요…….”

그의 말은 요즈음 내가 <사도신경> 특강을 하면서 ‘주님’을 설명할 때 논리와 역순으로 비슷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님’은 쉽게 말하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주인’입니다. 아파트의 주인, 가게의 주인, 회사의 주인 등등……. 그런데 차이는 그 지배권의 범위, 즉 사이즈가 다르다는 데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의 지배권의 크기는 얼마만할까요?”

“…….”

“우리의 주님은 바로 ‘우주 만상의 주인’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역사의 흥망성쇠, 생사화복을 결정지으시는 분이라는 얘깁니다. 본래 이것은 성부 하느님의 권한이었습니다. 그것을 성자 아드님에게 양도하신 것이지요. 왜, 성경에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님’에 숨겨진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면,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격려와 발견이 된다. 바로 그 ‘주님’이 우리의 든든한 ‘빽’이라는 사실이 실감나게 깨달아 지기 때문이다.

이제 ‘그 외아들 우리 주님’의 원뜻을 본격적으로 헤아려 보기로 하자.



■ 그 외아들

지난번에 다룬 ‘예수 그리스도’에 이어 따라오는 고백은 ‘그 외아들’(Filium eius unicum)이다.

여기서 ‘필리움’은 ‘아들’을, ‘에유스’는 ‘그의’를 뜻하고, ‘우니쿰’은 ‘오직’ 또는 ‘하나’를 뜻한다. 합하여 ‘그 외아들’이 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배치되었다. 따라서 이 고백은 “예수가 어째서 그리스도냐”를 설명하는 동시에 “예수가 그리스도라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겠다.

‘외아들’이란 말은 원래 그리스어 ‘모노게네스’(monogenes)의 번역인데 이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게네스’(genes)는 하느님이 ‘낳으신’ 아들을 말한다. 낳으셨다는 말은 창조했다는 말과 전혀 다른 말이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지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낳으셨다. 그러기에 예수님과 하느님 사이에는 특별한 친밀성과 일치성이 있다.

‘모노’(mono)는 오로지 하나를 뜻하기도 하지만 ‘독특한’(unique)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모노게네스는 ‘하느님께서 독특하게 낳은 아들’이란 뜻이다. 곧 하느님이 아들을 낳았는데 사람의 모습을 취해서 낳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결국, ‘외아들’의 의미는 구원전권의 필요충분한 상속자임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가 앞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 ‘아빠 하느님’을 배웠지만, 이 하느님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대신 예수님을 상대해도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전권을 남용하지 않으신다. 전권을 이미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어 구원활동을 하실 때 매번 성부 하느님의 결재를 받으신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억하는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항상 아버지께 감사드리시고, “아버지, 어떻게 할까요?” 하고 여쭈시고, 큰일 이루고 난 다음에는 제자들에게 “잠깐 다녀올게”라고 하시며 혼자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을 만난다. 그것이 외아들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 사이의 특별한 친밀성이다. 요한 복음서에는 이 관계가 간결하게 선언되어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요한 10,30).

■ 우리 주

이어 ‘외아들’의 동격으로 ‘우리 주’(Dominum nostrum)가 고백된다. 여기서 ‘도미눔’은 ‘주님’을 뜻하며 ‘노스트룸’은 ‘우리의’를 뜻한다.

주님을 뜻하는 ‘도미눔’은 그리스어 ‘퀴리오스’(kyrios)의 라틴어 번역이다. 이 용어의 신학적 계보는 히브리어 ‘아도나이’(adonay)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이름 ‘야훼’를 알았지만, 아무도 감히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부르지 못하였다. 함부로 하느님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름 대신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이는 특별한 뜻 없이 하느님 이름의 모음에 다른 자음을 붙여 발음한 것이었다. 70인역 성경은 이 아도나이를 그리스어 ‘퀴리오스’로 번역한다. 그리스어에서 이 말은 본래 ‘왕’에게 사용되던 말로, 우리말로는 ‘주’ 또는 ‘주님’으로 번역된다.

주님은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지니신 임금, 곧 주권자를 뜻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바로 ‘역사의 흥망성쇠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 ‘나의 생사화복을 쥐고 계신 분’, ‘최종 결정권을 갖고 계신 분’으로 고백하는 셈이다. 엄청난 고백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주님이라는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이지 않고, 세상의 어쭙잖은 허수아비 우상들에게 헌정하는 어리석은 신앙이탈자들이 곧잘 있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초 가톨릭 교계에서 핫이슈화 되었던 자연영성, 뉴에이지, 신흥영성이 교묘하게 변장술을 써가며 여전한 영향력으로 존속하고 있음을 우리 신앙인들은 깨어 경계할 일이다.

종합해 보자. 결국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이라는 고백은 각 단어에 마다 천지를 진동할 기운이 서려 있다. 구원전권, 역사의 최종 결재권, 그리고 구원자! 이 단어들이 어디 예사로운 단어들인가. 이렇게 사도신경의 표현들은 저마다 강력한 파워를 지닌 기도 언어가 된다.

우리가 뭘 모르고 바치는 이 고백 속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영적인 악의 세력들이 이런 기도 언어에 더 민감하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도신경을 바칠 때마다 악은 벌벌 떨고, 하느님의 강력한 임재는 우리를 휘감는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도미니코 성인이 이단과 악의 세력에 대적할 강력한 기도의 무기를 청했을 때 천상으로부터 받았다는 ‘묵주기도’ 첫 번째 항목으로 <사도신경>이 배치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볼 수 있다.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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