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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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7) 소련군의 만행까지 가세

심한 약탈과 부녀자 성폭행 등 저질러/ 감금된 신부들 식생활 유지도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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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성 가목사(佳木斯)교구 교구장 로젠스타인 주교를 비롯해 스위스·벨기에·오스트리아·독일인 신부 10명도 추방을 당해 배를 타고 1953년 11월 홍콩에 도착했다. 당시 로젠스타인 주교는 소련군들의 만행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소련 군인들의 대다수는 20세 미만의 청년들이었는데, 그들은 가목사에 들어와서 약탈을 심하게 하고 부녀자들을 성폭행하는 등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성당에 들어와선 총을 마구잡이로 쏘아 성상들도 부수어버렸다. 한번은 소련 병사 한명이 로젠스타인 주교에게까지 총을 발사하려고 했지만, 다행히 다른 병사가 만류했다고 한다.

해가 바뀌어도 외국인 선교사들을 박해하는 중국 공산당들의 움직임은 줄어들 줄 몰랐다. 예수회 임대례 신부의 사례를 살펴보자면, 공산당들은 임 신부를 추방할 이유를 찾기 위해 음모까지 꾸몄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임 신부는 성당 내에서 진료소와 의원(醫院)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위생국(衛生局) 관리들이 이곳의 약을 싹쓸이 해갔다. 그리곤 곧바로 임 신부를 체포해 감옥에 가둬버렸다. 임 신부에게 씌워진 죄목은 그동안 가짜 약을 환자들에게 복용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민재판을 열고, 어디선가 품질이 나쁜 약과 가짜 약을 구해와 늘어놓고는, 바로 임 신부가 환자들에게 준 약이라고 악선전을 했다. 그 모습을 본 한 수녀가 전시 되어있는 약들은 임대례 신부가 사용한 약이 아니라고, 그 약과 다르다고 증언하자, 수녀들은 물론 신자들 중 누구도 임 신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감금시켰다. 외출도 못하게 된 임 신부는 당장 식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광동성 안량성당.
 
 
성모성심회 문해덕(중국명 文海德) 신부는 1933년 몽골인들이 살고 있는 영하(寧夏)교구 성천(城川)에서 사목을 했었다. 그는 1951년 체포됐는데, 무려 2년 동안이나 팔과 다리에 쇠사슬을 매달고 생활해 홍콩에 들어와서도 그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한 공산당들은 문 신부를 장기간 암실에 가둬, 그의 두 눈엔 심각한 염증이 생기기도 했다.

추방되기 전에 감옥에서 겪은 추위와 배고픔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감옥에서 무염(無鹽),무유(無油)하고 조미(調味)를 하지 않은 죽을 조금씩 받아먹었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여름에 체포될 때 입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겨울을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때문에 추방되어 홍콩에 도착한 신부들 중에는 너무나 피골이 상접해 친구 신부들조차 알아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상구(商丘)교구 내 외국인 선교사들은 1951년부터 1954년 사이에 모두 추방당했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은 당시 중국 정부측에 자국의 선교사들을 석방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아 한국인 신부들이 석방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이어졌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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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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