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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와 일치 특집] 가톨릭교회가 기울여 온 노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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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말로만 ‘평화’를 외치는데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이 세상 속에서 평화를 일구는 일에 앞장서왔다. 교회가 뿌린 평화의 씨앗은 온갖 시련에도 시들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고 있다.


■ 국제사회 위기 속 평화 갈구

1944년 세상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약 5000만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전쟁 난민을 낳는 참혹한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전쟁으로 아픔을 겪는 이들을 기꺼이 품으로 받아들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교황의 하계별장지로 알려진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를 피난수용소로 개방해 1만2000명의 전쟁 난민을 보듬었다.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뻔했던 ‘쿠바사태’ 때도 교회는 평화의 사도로 나섰다. 쿠바사태는 소련이 쿠바와 협정을 맺고 ‘중거리 탄도탄 기지’를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알아채면서 일어났다. 1962년 10월 22일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소련이 서반구에 대해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밝히고 쿠바로 향하던 소련제 무기의 수송을 함정 180여 척, 군용기 1200여 대로 봉쇄한다. 이 과정에서 세계는 사상 초유의 핵전쟁이라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직면한다. 살얼음판 같은 정세 속에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쿠바에 건설 중이던 미사일 기지 철수를 선언하고 미국은 쿠바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선포하면서 상황은 종결된다. 이 역사의 이면에는 성 요한 23세 교황의 노력이 있었다. 교황은 세계 평화를 위해 미·소 두 국가에게 대화로 평화롭게 사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의 중재로 미국과 소련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위기를 넘기게 됐다.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노력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평화를 갈구하는 신앙심으로 냉전체제 종식에 이바지했다. ‘평화의 순례자’라는 수식어에 어울리게 그는 1979년 6월 폴란드를 방문해 공산 독재에 스러져 가는 이들을 찾아 위로하고 그들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1989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던 고르바초프를 만나 냉전체제에 대한 입장을 전하는 등 냉전체제의 종언과 국제사회의 안정을 위해 기꺼이 움직였다.


■ 한반도 평화 위해 기도하는 교회

교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함께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 방문 당시 연설에서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교황은 한반도의 정전체제가 평화로 나아가기를 기도하고,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8월 18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미사에서 교황은 “오늘의 미사는 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라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도 확인됐다. 지난 5월 로마 교황청 대통령 특사로 다녀온 김희중 대주교(주교회의 의장)는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에게 교황이 축복한 묵주를 전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남북관계가 평화롭게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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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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