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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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의도가 의심스러우면 먼저 믿어 버려라”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인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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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측 대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측 대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통일부 공동취재단

▲ 2001년 8월 평양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장 김종수 신부가 귀국 직후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어떻든 통일 논의는 계속돼야 하고, 남북의 화해를 위해 민간단체들도 공동의 이해를 끌어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새해 첫날,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가 우리 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문재인 대통령이 곧바로 환영의 뜻을 밝혔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 있는 인사들과 협의를 거쳐, 그 이튿날 오후 기자회견을 통하여 북측에 1월 9일 남북고위급 회담을 갖자는 제안을 했다. 북에서도 재빠르게 답을 보내왔다. 다음 날인 1월 3일 오후 3시 30분에 남북 직통 전화를 재개하며,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북의 텔레비전을 통하여 조명균 장관의 제안 수용을 발표했다.

한반도 전쟁 위기 속에 최고조로 지속되던 긴장에 한숨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12월 28일, 통일부 통일정책혁신위원회의 활동 보고를 맡았던 필자로서는 희망의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물론 북의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언론에서도 비판을 많이 했다. 이럴 때 필자는 말한다. “의도가 의심스러우면 믿어 버려라. 그리고 상대가 다른 수를 부리기 전에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일을 진척시켜라. 꼼수를 정수로 이기는 길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 마침내 성사

북한의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말하면서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선언이다. 그러나 그는 남북 문제는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로서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을 따라 남북 관계 개선의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제안하였다. 이 말은 남북 문제를 남과 북이 직접 만나 대화로 풀어가자는 제안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어서 “겨울철 올림픽 경기 대회”를 거론하며 이를 만남과 대화의 구체적 계기로 제시하였다. 그는 신년사 끝에서 “겨울철 올림픽 경기 대회는 민족의 위상을 과시할 계기이며 이 올림픽이 성과적으로 개최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하면서 북의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남북 당국이 이를 위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해 남과 북 그리고 세계와 ‘화해’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남쪽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문을 더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제안한 ‘남북 고위급 회담’이 마침내 성사되고, 공동 발표문도 보도되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이후에 이루어질 실무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정례화하고, 어떤 장애에도 북핵 문제를 포함하여 산재한 문제들을 대화로 풀어가며 남북의 교류 협력의 길을 트는 계기가 되길 빈다.



미국의 선제공격은 한반도 전쟁 의미

우리는 미국이나 주변 국가들과는 다른 입장에 있다. 우리는 전쟁의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피해 당사국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나 무기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들의 선제공격이 북을 단번에 간단히 괴멸시킬 수는 없다. 북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은 곧, 한반도 전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전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잃게 할 것이다.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일찍이 “평화는 아무것도 잃게 하지 않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잃게 할 수 있습니다”(1939년 8월 24일 라디오 연설 중에서)라며, 평화를 역설하고 전쟁을 막아보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1939년 9월 1일)을 눈앞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역사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스승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잘못을 거듭한 인간을 역사 안에서 보아왔다. 결말을 미리 보면서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게 인간이다. 그 잘못을 한반도에서 저지르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모 방송의 토론자로 나온 인사들이 미국의 ‘미니 핵무기’ 개발을 이야기하며, 김정은을 제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신이 나서’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한반도 전쟁의 시작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들은 어쩌면 한반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와 다른 사람일지 모른다. 모든 대화나 협상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필자는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길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편을 가르는 일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남북 문제는 분단된 이 땅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제로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통일 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다. 통일 교육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는 수단이며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통일이 가져올 장기적인 유익을 찾도록 이끌어야 한다. 통일 이후 꽤 계속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의지도 다져야 한다.

필자는 6ㆍ25 전쟁 직전에 월남(越南)한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어려서부터 북에 대한 부정적 교육을 받고 자랐다. 한편으로 필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라면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분단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의지도 함께 키웠다. 필자는 분단 이후 잦은 남북의 충돌에서 입은 상처가 서로에 대한 증오를 더 크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에겐 살아오면서 지니게 된 상처들이 있다. 오랜 민주화 과정에서 입은 상처도 크다. 제도적인 불공정에서 받은 상처도 많다. 직장의 윗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도 적지 않고, 개인적인 관계에서 얻은 잊기 어려운 상처들도 있다. 그 상처는 그 상처를 입게 한 상대와 상처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 기억을 치유함으로써 가능하다.



기억하지 않으면 상처 치유도 불가능

그것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기억의 정화’라고 하셨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과 정의의 회복을 “정치 보복”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잊으라고 한다. 기억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도 잊어서는 안 되고, 세월호도 잊을 수가 없다. 국정농단의 그 어이없는 일들도 기억해야 한다. 상처를 씻고 화해하기 위해서도 기억을 공유해야 한다. 제발 잊으라고 말하지 말아 주기 바란다. 필자는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

남북의 위태로운 관계는 언제든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지난 상처를 치유하고, 더 이상의 상처를 남기는 않는 길을 찾자. 우리는 기도한다. 남북의 화해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기도한다. 그렇게 기도하고, 그 기도의 실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로 몰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 감사한다. 남과 북을 한자리에 앉게 하였으니 고마운 일이다.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로 가는 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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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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