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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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에 지친 선수들에게 신앙의 위로 전해

평창 동계올림픽 현장을 찾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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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 엠블럼



평창 올림픽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참가하게 된 2014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 참가한 지 정확히 4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특히 소치 올림픽 이후에 5번 이상 국제 대회들과 아시안 게임, 그리고 올림픽에 참가해서 그런지, 경험이 쌓이고 처음과는 다르게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무언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선수들을 위해 해줘야 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 임의준(왼쪽 두 번째) 신부가 박주희(아녜스, 왼쪽) iSF 사무국장, 산체스 몬시뇰, 평창선수촌장 유승민 IOC 위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소치 올림픽과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AD카드(행사 비표)도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에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춘천교구에 배정됐던 ‘다종교실(Multi Faith Centre)’ 운영자 자격도 춘천교구에서 기꺼이 저에게 양보해주셨기에 소치 올림픽 때처럼 어려운 시작은 하지 않았습니다.

평창에 도착한 날(7일), 당당히 AD카드 등록부에 가서 카드를 받고 평창과 강릉 선수촌에 있는 다종교실을 방문하고 여러 가지를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별로 배정받아 운영했던 소치 올림픽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선수들이 요청하고 담당자들이 예약하면, 4~5개의 기도실을 쓸 수 있게 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선수들과 함께 미사와 기도 드릴 공간이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첫날이 지날 무렵, 바티칸에서 특별히 이번 올림픽을 위해서 파견되신 분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교황청 문화평의회 부의장 멜초르 산체스 몬시뇰님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가진 AD카드는 그분을 만날 수 있는 등급의 카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냥 기도를 했습니다. 길에서라도 우연히 마주칠 수 있게 되기를요.

이탈리아 선수단 입촌식에 참여했을 때였습니다. 입촌식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온 신부님이 계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초대석을 살펴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저와 아주 가까운 박주희 (재)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사무국장님과 이번 올림픽 평창선수촌 촌장을 맡으신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님이 계신 걸 알게 됐습니다. 그분들께 직접 가서 인사를 나누려는 순간, 클러지(clergy) 셔츠가 보였습니다. 저는 그저 이탈리아에서 온 신부님이려니 하고 가서 인사를 나눴는데, 그분이 바로 멜쵸르 산체스 몬시뇰님이셨습니다.

▲ 올림픽의 상징 오륜기 안에 평창 동계올림픽 현장을 누비며 사목자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 임의준(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 신부가 찍은 사진을 넣었다. 왼쪽부터 경기 전 간절히 기도하는 스피드스케이팅 박승희(리디아) 선수, 폴란드에서 온 주교와 신부, 기도하는 스피드스케이팅 김민선(가타리나) 선수, 개막식 참가를 위해 밖에서 줄을 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우리 네 명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이 제가 평창 올림픽에서 찍은 첫 사진이 됐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가톨릭 신부님들이 지닌 AD카드 등급은 모두 달랐습니다. 아무래도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와 폴란드의 신부님들은 선수단에 소속돼 있어 선수촌 출입과 경기장 출입이 가능한 AD카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와 오스트리아에서 온 신부님들은 선수단에서 제공해준 단복도 입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폴란드는 주교님 한 분에, 신부님이 두 분이나 참가하셨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할 때마다 저는 AD카드를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선수단 단복까지 입고 신분이 보장된 신부님들을 보면 늘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분들께 부러운 점은 여전히 많았지만,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응원해주시러 오신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님이십니다. 염 추기경님한테서 개막식에 오시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은 보통 VIP이기 때문에 오시더라도 제가 만나 뵙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구역에 추기경님께서 오실 수 있지만, 추기경님께서 가시는 지역에는 제가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락을 받고 아주 많이 놀란 것은 추기경님께서 일반인 자격으로 오신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미 초대도 받으시고 자리도 준비돼 있어 개막식을 편안히 보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추기경님은 “스포츠 선수들과 스포츠 분야를 위하는 길은 입장권을 사서 참가해 주는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개막식 입장권을 사서 오셨습니다.

제 입장권도 사주시면서 함께 개막식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했지만, 쌀쌀하고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추기경님과 동생 신부님이신 염수완 신부님, 저는 개막식 2시간 반 전부터 입장을 위해서 줄을 서 있었습니다. 추기경님과 신부님과 함께 서 있으면서 진정으로 스포츠를 위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 선수촌 미사 때 사용하는 작은 십자고상과 제의, 성유.



선수촌 내에서 거행되는 미사는 소규모 미사입니다. 참석자가 1명일 때도 있고 많아도 6명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선수들이 종목별로 나뉘어 있고 훈련 일정과 식사 시간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간을 딱 정해놓고 미사를 봉헌하기보다는 선수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틈나는 대로 미사를 봉헌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루에 미사를 4~5대 정도 봉헌하는 날도 많이 있습니다. 오전에는 평창 올림픽 선수촌 종교실에서 선수들을 기다립니다. 점심시간에 맞춰 고속도로에 차량이 적어지면 그 시간을 이용해 강릉 선수촌 종교실로 이동합니다. 그때부터 밤 11시까지 종교실이나 그 인근에서 기다리면서 선수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미사와 기도 일정을 조정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종교실을 담당하는 팀장님 눈치도 보이고 해서(종교실에 종교인들이 상주하거나 오랜 시간을 점유하지 않도록 협의를 했다고 합니다) 경기장과 선수촌 주변을 터덜터덜 걸어 다녔습니다. 선수촌 내에 있는 상점 옆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다림 끝에 간절히 기도하는 선수들을 만나면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올림픽 기간엔 하루하루가 새로운 듯하면서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또 정해진 일정 사이사이로 다른 일정이 생겨 빡빡하지만, 그래도 선수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긴장 가득한 선수들 얼굴이 태릉 선수촌에서 만나던 때 보여줬던 편안하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돌아왔을 때 ‘참 잘 왔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 임의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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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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