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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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치마 입은 성모, 옹기 빚던 신앙선조 떠올리게 해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19) 김창억의 ‘성체강복’(聖體降福), 권영우의 ‘성모자’(聖母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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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는 서양화 12점, 한국화 9점 총 21점의 회화가 출품됐다. 앞으로 소개할 회화 작품은 2점만을 남겨놓고 있는데 바로 이번 글에 소개할 김창억(金昌億, 1920~1997)의 ‘성체강복’과 권영우(權寧禹, 1926~2013)의 ‘성모자’다. 두 작품은 각각 서양화와 한국화로 이 중 김창억의 ‘성체강복’은 현재 남아 있는 성미술 전람회 사진에서 남용우의 ‘성모칠고’와 김정환의 ‘성모영보’ 사이에 전시됐던 모습이 포착되어 출품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김창억 ‘성체강복(聖體降福)’(1954)

 

 


기하학적 구조로 성체현시 장면 묘사

1920년 출생한 김창억은 경성 제2고보 재학 시기에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에게 미술을 배웠다. 이후 일본 동경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장욱진, 유영국 화백과 동시대에 활동하며 ‘2.9동인전’, ‘신상전’, ‘상형전’ 등에 참여했다. 그는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경기여고 교사,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김 화백의 ‘성체강복’은 기하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단순화된 구상적 표현을 특징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흑백사진만으로는 그 표현기법과 재료 및 색채를 파악하기 어려워 아쉽다.

작가는 작품 중심부에 성광을 배치하고 양옆으로 화면 상단 끝까지 이어지며 빛을 발하고 있는 긴 초들을 그려 넣어 수직적인 구조를 강조하고 있다. 세 인물의 뒷모습이 등장하는 작품 전경에는 성광에 모셔진 성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성체현시(聖體顯示) 장면이 묘사됐다.

배경에 벽돌로 마무리된 벽감에 놓인 인물상은 후광의 표현으로 보아 성인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인상 정면을 긴 초가 가로지르고 있어 정확한 이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 성인상이 명동대성당에 있는 장발의 ‘14사도’를 회화로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조각으로 세워진 것인지도 확실히 알기 어렵다. 그저 최소한의 정보만을 드러내며 흔적처럼 존재하고 있는 성인상은 우리나라의 서양식 옛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풍경으로 제시되고 있다.

김창억의 ‘성체강복’은 제목 그대로 성체가 모셔진 성광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표현됐다. 성체 앞에 선 사제와 복사들이 모두 뒷모습으로 표현됐고 정면을 향하고 있는 벽감 속 성인상의 모습도 긴 촛대에 가려져 성인상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따름이다. 이렇게 화면 속 성광은 그 앞에 서 있는 인물들과 뒤에 놓인 성인상으로 인해 화면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더욱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전경의 인물들과 성인상의 구체적인 모습은 인지할 수 없어 화면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하며 성광을 향해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거의 모든 작품이 그러했지만, 김창억 화백의 ‘성체강복’은 원화의 색감이 무척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특히 빛나는 촛불의 표현과 전면에 그려진 인물들의 머리와 촛대에 그려진 테두리들이 어떠한 색채로 표현되었을지 다양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작가의 동시대 작품에 비추어 추측하건대 강렬한 색감이었을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성체(성광)와 작품 속 나머지 색들이 어떻게 어우러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 권영우 ‘성모자(聖母子)’(1954)

 


한복 입은 성모자 모습 구상적 표현

권영우의 ‘성모자’는 권 화백이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두 후광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원형을 배경으로 한복 입은 성모자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권영우는 1926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출생했고, 해방 직후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에 입학해 1951년에 졸업하고 1957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권 화백은 미대 재학시절 주로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착안해 비교적 사실적인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다양한 양식적 실험을 시도했다. 이렇게 그는 전통적인 산수화, 화조화, 문인화의 전형적인 동양화를 넘어선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여줬다.

추상적인 동양화를 선보인 권 화백은 초기에는 한국화의 기본 재료인 수묵으로 구상적 추상의 표현 가능성을 탐구해 ‘바닷가의 환상’(1958), ‘섬으로 가는 길’(1959) 등으로 연이어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문교부장관상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부터 붓과 먹을 쓰는 것에서 벗어나 한지(韓紙)를 매체로 이용해 추상적인 작업을 시도한 권 화백은 1979년 파리화단에서 활동할 당시 한지작업과 함께 과슈(gouache)와 먹을 혼용한 단색조의 색채를 가미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1990년 귀국 후 다시 백색의 한지와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을 시도하며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권 화백 역시 중앙대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권 화백이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한 ‘성모자’에는 구상적 추상을 추구했던 당시 화풍이 드러나 있다. 배경은 마치 빛이 퍼져나가듯 원형이 반복되는 모습으로 단순히 처리되었지만, 화면 중심에 표현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지극히 구상적인 표현이다. 권 화백 역시 성미술 전람회의 종교적 주제에 맞춰 작품을 구상하면서 실험적 표현보다는 주제를 드러내는 데 좀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작품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성모 마리아는 쪽 찐 머리에 한복을 입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까치두루마기(오방장두루마기)에 복건을 쓰고 술 장식이 달린 버선까지 한껏 차려입은 아기 예수는 나이에 비해 의젓한 모습으로 왼손에 구원의 승리를 상징하는 빨마가지를 들고 있다. 서로 머리를 맞댄 어머니와 아기의 다정한 모습에서 인간적인 푸근함이 묻어나는 성화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유독 우리의 시선을 끄는 부분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 표현된 성모마리아의 치마이다. 마치 커다란 항아리 모양처럼 그려진 성모 마리아의 한복 치마는 인체 비례 상으로는 적절해 보이지 않지만, 화면에 무게 중심을 잡고 뿌리를 내리고 있듯이 표현되었다. 이러한 항아리 형태의 치마는 박해시대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생업으로 옹기를 빚으며 살아갔던 옛 신앙인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회화 작품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했다. 이제 김종영, 장기은의 조각 2점과 성미술 전람회 진행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장발, 이순석의 작품만을 남겨 놓고 있다. 작품을 소개하는 동안 원작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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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6-0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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