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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이야기] 여덟 번째 - 제주교구 용수공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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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풍경, 천혜의 섬 제주.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지만 아직은 관광지로 여겨지지 않아 천만다행인, 보석 같은 바다가 있다. 제주 서쪽 한경면 ‘성 김대건 해안로’ 6㎞가량 되는 바닷가 해안도로는 아름다운 제주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띈다. 그 끄트머리 김대건 신부가 처음으로 조선 땅에 발을 디딘 포구,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한 땅이 놓여 있다. 지금은 깔끔하게 개발이 된 용수성지, 그곳을 신심이 돈독한 용수공소의 신앙 공동체가 지키고 있다. 용수공소는 제주교구에서 3번째로 설립된 한경면 신창본당(주임 정필종 신부) 관할이면서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이 들어서 있는 용수성지(담당 허승조 신부) 안에 자리잡고 있다.


# 김대건 신부 첫 표착지의 자부심

용수공소 신자들은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의 정신이라는 두 가지 큰 축복을 선물 받았다.

“김대건 신부님이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이 바로 여기에요. 복 받은 거죠. 우리는. 신자들 모두 그에 대한 자부심이 무진장 큽니다. 그래서 신앙도 당연히 깊어요.”

투박하지만 확신에 찬 말투로, 용수공소 이수찬(시메온·68) 회장이 말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하는 투다. 한국 최초의 사제가 처음 발을 디딘 곳에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용수공소 신자들의 자부심은 드높기 이를 데 없다.

포구에는 자그마하지만 누구라도 알아보기 쉽게 표지석이 서 있다. “이 곳은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범선 라파엘호로 1845년 9월 28일에 표착한 바닷가이다.”

표지석 위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용수성지가 자리잡고 있다. 제주교구는 1999년 9월 19일 이곳을 성지로 선포했다. 성지 왼쪽에는 기념성당, 오른쪽에는 배의 형상을 본떠 세운 기념관이 있다. 마당 한 쪽에는 김대건 신부가 타고 온 배를 복원한 라파엘호가 놓여 있다.

용수공소 오창해(즈가리야·61) 선교사는 “용수공소 신자들의 신앙은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며 “일상의 신앙생활에서도 항상 지향과 기준은 김대건 신부님”이라고 말했다.


# 공동체의 전통을 이어

용수공소가 설립된 때가 1949년 9월 1일, 지금의 제주 주교좌중앙본당인 제주본당 관할로 설립됐다. 1952년에 신창본당이 설립되면서 소속이 변경됐다. 그리고 2008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성당이 봉헌됨에 따라서 공소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기념성당의 정면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 진쟈샹(金家巷)성당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고, 지붕은 거센 파도와 그에 맞서 싸우는 라파엘호를 형상화했다. 이전에 공소로 사용하던 곳은 현재 보존돼 있긴 하지만 공적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용수공소가 속한 신창본당 관할 지역은 거의 교우촌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복음화율이 높았다. 전해지는 말로는 한때 전체 인구의 80가 신자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이 지역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밤이면 빨갛게 반짝이는 십자가가 단 한 개도 없다고 한다. 지역 자체가 천주교 교우촌격이라 개신교 예배당이 없는 탓이다.

특별한 것 없이 소박하지만, 공소 공동체의 신앙 전통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가난하고 힘들어하는 이웃을 위한 돌봄은 목욕 봉사에, 함께 일구고 거두는 공동체의 전통은 공소 소유 1000여 평 밭 경작에 그대로 담겨 있다.

공소 활동의 가장 큰 부분 중의 하나가 어르신들 대상의 목욕 봉사다. 매주 화요일마다 이른 아침이면 어르신들을 모시고 목욕 봉사와 한의원 진료를 간다. 한경농협에서 운영하는 목욕탕을 찾아가 혼자서는 몸을 씻기 힘든 어르신들을 정성들여 씻기고 입힌다. 고산경희한의원에서는 무료로 7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침, 부항, 찜질 등을 시술해 준다.

성지 곁에는 꽤 넓은 평수의 콜라비 밭이 있다. 근 1000여 평에 이르는 규모의 콜라비 밭은 전적으로 공소 공동체 신자들의 노력 봉사로 경작된다. 오창해 선교사는 “작지 않은 밭이지만 신자들이 내 일처럼 나서는 덕분에 밭 경작이 무난하게 이뤄진다”며 “연 1500박스 정도는 거뜬하게 수확하고 그 수익금은 공소 운영 등 공동 경비로 쓰여진다”고 설명했다.


# 공소 설립 70주년을 보내며

용수공소는 두 달 뒤인 9월이면 설립 70주년을 맞는다. 거창하고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성 김대건 신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충실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기 위한 기도운동을 펼치고 있다. 공소 설립 후 지금까지 돌봐 주신 하느님과 은인들에 대한 감사기도, 설립 70주년의 의미와 뜻을 되새기기 위한 9일 기도운동을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다.

공소 신자들의 생업은 주로 농사다. 양파, 감자, 마늘, 콜라비 등등 안 짓는 농사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이모작, 삼모작을 짓느라 일년 내내 바쁘다. 오 선교사는 “신자들이 모두 바쁜 생활을 하지만 결코 주일을 소홀히 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며 “신앙 생활의 여러 가지 의무와 계명들을 철저할 정도로 지켜 나간다”고 말했다.

물론 용수공소 역시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른 어려움에서 비켜서 있지는 못하다.

무엇보다도 공소를 지키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젊은이들은 도회로, 뭍으로 떠나는 탓에 고령화가 극심하다. 공소회장 이수찬씨도, 총무 김경민(요한·66)씨도 막내축에 끼고 공소 신자 대부분은 70세가 훌쩍 넘는 고령이다. 올해 97세의 김백욱(가브리엘)씨가 최고령이다. 김경민씨는 “저희가 어린 탓에 회장이랑 총무를 맡게 됐다”며 웃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주나 전입으로 인해 공소 신자 수가 미미하게나마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다. 2017년말 실거주 기준으로 78명이었는데 2018년말에는 2명이 늘어나 80명이 됐다. 용수성지를 찾는 이들도 점점 늘어난다. 2015년 4월 순례객 20만 명, 2018년 2월 순례객 30만 명을 돌파했다. 앞으로 더 많은 신자들이 순례를 올 테니, 공소 신자들의 몫도 더 커질 터이다.

김대건 신부에 대한 자부심과 아름다운 풍광, 공동체의 신앙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용수공소 신자들은 지금까지처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앞으로도 간직해나갈 생각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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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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