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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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 도포 입은 예수 그리스도… 성화의 토착화 추구

[붓을 통한 신앙 전파] 2. 성 베네딕도회 앙드레 부통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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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통 신부는 프랑스 야수주의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했다. 그림은 부통 신부가 안동교구 청송성당 제대 벽에 그린 ‘그리스도 왕’ 벽화.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된 앙드레 부통(Andr Bouton OSB, 1914~1980) 신부의 한국 체류는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벽화 작업을 하던 그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올라프 그라프 신부와 만나면서 한국에서의 예술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다. 주로 아시아 국가의 선교를 담당했던 올라프 신부는 예루살렘 성모승천대수도원 지하성당에 전시되어 있던 부통 신부의 그림과 동판화 작업을 보고 그림을 통한 선교를 펼쳐 달라고 부탁하며 그를 한국으로 초대했다. 이를 계기로 부통 신부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머물며 10여 년간 전국의 성당, 수도원, 학교, 병원 등에 벽화를 제작했다.



그림값 받지 않고 춤추듯 빠르게 그려

부통 신부가 한국에 온 1960년대는 한국에 진출해 있던 성 베네딕도 수도회가 1952년 왜관으로 이전하여 새로이 수도원을 건립하고 국내 교회 건축 및 교회 미술 분야에서 활약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그의 벽화 작업은 같은 시기 왜관수도원의 알빈 슈미트 신부에 의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교회 건축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실행될 수 있었다. 그는 해마다 1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부통 신부의 벽화 제작 과정을 본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본당 신부의 요청이 있을 때에 식사와 믹스커피만 대접받고 그림을 그렸으며 별도의 그림값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부통 신부의 벽화 제작을 지켜봤던 이들은 그가 ‘마치 춤을 추듯이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힘을 들이지 않고 너무 쉽게 그림을 그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대전 대흥동주교좌성당에 있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벽화는 부통 신부가 한국 교회에 남긴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부통 신부가 한국에 남긴 대표적인 벽화 작품으로는 대전 대흥동주교좌성당의 벽화 10점(현재 두 점만 남아 있음)과 청송성당의 벽화(현재 소실), 서울 프란치스코회 경당의 벽화(현재 소실)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중 다수가 지워지거나 성당 신축으로 소멸됐고, 왜관ㆍ상주ㆍ성주 지역 약 20여 곳의 성당과 공소에 작품이 남아 있다. 다행히 프랑스 위스크수도원에 보관된 그의 유품 중에는 한국에서 제작한 벽화의 제작 과정과 완성작이 담긴 사진과 컬러 슬라이드 필름이 간단한 메모와 함께 보관되어 있어 현재 소실된 벽화의 이미지를 부분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앙드레 부통 신부는 성화의 토착화를 추구했다. 그는 벽화를 제작할 때 각 나라의 풍광과 현지인들의 모습을 그려 넣어 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유도하고자 노력했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벽화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성인의 모습이 모두 그의 해석에 따른 한국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아울러 그는 교복 입은 학생들, 짧은 단발머리에 한복 차림을 한 어린 소녀들을 배경에 함께 등장시키거나 인근의 풍경을 작게 그려 넣어 성화에 현장감을 더하고자 했다.

현재 소실되었지만, 청송성당의 예수상과 가톨릭대학교 병원 성주분원 진료실의 ‘한복을 입은 아폴린 성녀상’ 등 앙드레 부통 신부가 남긴 벽화 곳곳에서 한국적인 표현으로 완성된 그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 가톨릭대학교 병원 성주분원 진료실에 그린 부통 신부의 ‘한복을 입은 아폴린 성녀상’.




생동감 있고 강렬한 색채 주로 사용

부통 신부는 1966년 6월 7일에 축성된 청송성당 제대 벽과 창쪽 벽에 벽화를 그렸다. 성당 신축으로 소실됐지만 남아 있는 사진 자료를 통해 제대 쪽 벽에 한복을 입고 옥좌에 앉은 왕의 모습으로 표현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재현한 벽화를 확인할 수 있다.

벽화 정중앙에 자리 잡은 예수 그리스도는 검은 머리카락에 한국인의 이목구비를 하고 붉은색 도포와 전통 신발을 신고 오색의 산을 밟고 있다. 도포 흉배(胸背)에는 한자로 王中王(왕중왕)이 세로로 쓰여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손에 펼쳐 든 성경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라는 말씀을 한글로 적어 넣었다. 한글과 한자를 이용한 성경 메시지는 벽화 양옆과 하단의 가장자리에도 적혀 있다. 제대를 향하고 선 방향에서 왼쪽에는 한자로 정의(正義), 자비(慈悲), 진리(眞理), 평화(平和)가 위에서 아래로 한 단어씩 쓰여 있고, 오른쪽에는 天主의從(천주의 종), 主의羔羊(주의고양), 豫言者(예언자), 王中王(왕중왕)이 역시 같은 방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부통 신부의 벽화에는 프랑스의 야수주의를 연상시키는 생동감 있고 강렬한 색채가 주로 등장한다. 그는 고유색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각에 따라 과감하게 색을 사용했다. 강렬한 원색을 거침없이 사용할 뿐만 아니라 보색대비를 이용해 명암을 처리하는 등 파격적인 색채를 구사했다. 모든 성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부통 신부 역시 성경에 기초해 작품 주제를 결정했다. 그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성모님의 일생, 성가정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예수 부활상 주제로 한 벽화 주로 그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교세가 강한 불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자신의 벽화에 융합시키고자 노력했다. 따라서 부통 신부의 벽화에 등장하는 원색 중심의 강렬한 색채에서 사찰 건축의 단청이나 탱화, 한복의 대범한 색 조합, 민속신앙에서 사용되는 색채 등과의 영향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부통 신부는 당시 한국인의 87가 비그리스도교인이며 그중 다수가 불교 신자임을 고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부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불교의 덕목이기도 한 선행과 자비 그리고 영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십자고상을 선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부활상을 주제로 한 벽화를 주로 제작했다. 그는 자신의 성화가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만나게 하는 매개체인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자신의 벽화를 통해서 언어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신비를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례 공간을 이루어내고자 했다.


▲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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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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