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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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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안부’(慰安婦)가 아니다.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여성? 강제로 끌려가 하루에만 수십 명의 일본군인들에게 성폭행 당하는 것이 위안하는 거냐? 너희의 죄를 덮기 위해 ‘종군 위안부’라는 억지 표현을 만들어놓곤, 다시 그 ‘위안부’조차 없었던 것이라고 거짓말하고 또 거짓말하고…. 이게 ‘합의’할 일인가? 10억 엔을 주면 끝날 일인가? 돈을 원하는 게 아니다. 일본은 사죄하라! 진정한 참회와 용서가 평화를 가져온다! 무엇이 진실인가? 내가 증언한다. 내가 바로 살아 있는 역사의 증거다. 나는 92세 이용수다.”



■ 나는 이용수 비비안나

마주앉자마자 묵주에 매달린 십자가부터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주신 거야. 그때 교황님 손잡고 ‘우리 문제 좀 해결해주세요. 이 아픔을…’ 이 한마디 밖에 못했는데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교황과 만났다. 그는 하얀 미사포를 쓴 채 ‘나는 이용수 비비안나’라고 소개했다.

2007년 미국 워싱턴으로 향할 때였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 태평양환경소위원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한 청문회’에서 전쟁 중 당한 참상을 밝혀야 했다.

“덜덜덜 떨면서 미국으로 가려는데 한 수녀님께서 만들어주신 묵주를 받는 순간, 마음이 탁 놓이는 거야. 기도는 두려움을 없애주지.”

31년 전 대구 신암성당에서 박도식 신부 주례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평소 성당에 가고 싶단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웃사람이 간다기에 자발적으로 따라나섰다. 박 신부의 배려로 짧은 시간 교리를 익혔다는 이용수 할머니는 하느님을 철저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전쟁 중 함께 고초를 겪었던) 언니들과도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 나는 죄인이 아니라 피해자다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갔었다. 죽기 직전까지 패는 군인들의 손아귀를 당해낼 수 없어 도망도 못치고 죽을 수도 없었다. 타이완에 있는 카미카제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는 배 위에서부터 겁탈이 시작됐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겁탈, 반항하면 어김없이 폭력과 전기고문을 당해야 했다. 사타구니에 가래톳이 솟고 피범벅이 돼 제대로 설 수 없을 때도, 성병에 말라리아까지 걸려 끙끙 앓을 때도 군인들의 겁탈은 계속됐다. 1944년, 당시 16세였다.

1992년 남동생이 숨을 거두기 전 당부한 말을 기억하며 정부에 ‘위안부’ 피해 신고를 했다. 주변에선 신문사에 가서도 사연을 얘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두려운 나머지 10차례 넘게 돌아섰고, 용기를 내고도 친구의 사연을 전하는 척 입을 열었다.


■ 역사의 산 증인

그런데 “태평양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고 ‘위안부’ 공창(公娼)이었다”는 일본 법무상의 발언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1994년 일본 항의 방문이 본격적인 대외 활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이용수 할머니는 전 세계 어디든 달려가 실제 당했던 고통을 생생히 밝히고 있다. 전 세계인이 올바른 역사를 알고 평화를 실천하도록 돕기 위한 강연, 집회, 인터뷰 등이 수없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2000년 일본 도쿄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2007년 미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증언했다. 미국 의회 증언 과정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년·감독 김현석)로도 제작돼 우리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했다. 당시 김군자 할머니,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로프 오헤른 할머니도 각각 증언대에 섰다. 이때의 증언은 미국 하원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들에게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을 그 누구보다 소리 높여 반대했다. 아베 총리가 특강하는 미국 하버드대까지 가서 침묵시위도 했다. 2016년엔 유엔 본부에서, 2018년엔 프랑스 등지에서도 증언했다. 201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메리 스퀘어 기림비 제막식은 특별히 못 잊을 기억이다. 모 항공사를 이용해 해외에 오간 횟수만 지금까지 108회. 아흔을 넘긴 나이에 수없이 서울-대구 등지를 오가고, 해외 곳곳의 행사와 강연회 등에 참가하는 여정은 녹록치 않다. 하지만 결코 쉬지 않는다.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니까요. 일본의 잘못은 전 세계가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사죄하지 않고 있죠. 잘못을 청산해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올바로 알고 원수가 아닌 이웃으로 함께 살아야 합니다.”


■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이용수 할머니는 “북한에 가서도 증언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땐 남북한이 아니라 하나의 조선이었지. 가난했지만 콩 한 쪽도 나눠먹으며 정을 나누던 언니들도 보고 싶고.”

무엇보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의 주인, 이 세계의 주인이 누구죠? 바로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증언하고 교육을 지원해도 친일 정치인과 일본 정부 등의 망언이 튀어나올 때면 힘이 쭉 빠진다. 이용수 할머니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다 진실은 아니다”면서 “나는 진실을 말하기에 언제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다”고 외친다.

언제부턴가 그의 이름 앞에서 ‘인권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빛을 내고 있다. 각종 공로상과 인권상도 받았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는 어제도 그제도 거짓말을 일삼는 일부 정치인과 일부 시민들의 말에 고통스런 잠을 청해야 했다. 그리고 혼자 흐느끼다 잠에서 깨어날 때면, 증언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다짐한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고 평화가 번지는 바로 그날까지.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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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9-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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