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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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한글로 말씀하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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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은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글자인 한글은 조선후기까지만 해도 천대 받았다. 이런 한글을 발 빠르게 보급한 것은 바로 신앙선조들이다. 신앙선조들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고, 한글로 교리서를 보급했다. 하느님 말씀은 어떻게 한글로 전해졌을까? 한글날을 맞아 신앙선조들이 만났던 ‘한글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보자.


■ 낮은 이들에게 가까이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는 종교도 지식인들, 즉 양반들의 것이었다. 당시 종교는 평민들은 거의 알지 못했던 한자(漢字)로 말했다. 흔히 말하는 ‘공자왈, 맹자왈’의 유교 경전도 한문이었고, 불경도 읽으려면 한자를 알아야했다. 평민들의 입장에서는 공자도, 부처도 한자로만 말하는 높고 먼 곳의 존재였다. 그런 가운데 ‘천주님’만은 평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한글로 말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임에도 인간을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왔듯이, 한글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조선사회 안에서 홀대받던 평민, 천민들 가까이로 다가온 것이었다. 덕분에 한국교회 창립 초기부터 여성, 농부 등에서부터 백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믿기 위해 교회공동체에 찾아들었다.


■ 복음을 퍼뜨린 한글 교회서적

사실 신앙선조들이 가장 먼저 접한 천주교서적은 중국에서 건너온 한문서적이었다.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초기 신자들은 대부분 양반이었다. 그러나 초기교회 지도자들은 신자들을 위해 한글로 된 교회서적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복자 최창현(요한)은 성경을 비롯한 각종 한문교리서를 우리말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은 우리나라 신자들의 눈높이에서 한글로 교리를 해설한 「주교요지」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신유박해가 일어났던 1801년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120종 177권의 한문 교회서적 중 83종 111권이 한글로 번역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첫 영세자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이 세례를 받은 지 불과 16년 밖에 되지 않은 시기였다.

번역과 집필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신앙선조들은 더 많은 신자들에게 한글 교회서적을 전파하는 데도 너나 할 것 없이 나섰다. 박해로 교회서적을 인쇄하기 어려운 만큼, 신자들은 필사를 통해 교회서적을 보급했다. 성인과 복자 중에도 성 민극가(스테파노)를 비롯해 복자 정광수(바르나바)·윤운혜(루치아)·김사집(프란치스코) 등 많은 이가 교회서적을 필사해 나눠주고 교리를 가르치는 활동을 펼쳤다.

1864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 성 베르뇌(시메온) 주교가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목판 인쇄소를 마련하면서 한글 교회서적은 더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베르뇌 주교는 성 황석두(루카)의 도움을 받아 여러 교회서적을 한글로 저술하는 등 출판에 힘을 쏟았다.

베르뇌 주교는 성 최형(베드로)에게 출판기계를 맡기고 교회서적 출판 책임자로 임명해 책을 출판했다. 최형 성인의 문초 기록에는 성인이 “「천주성교공과」를 처음 발간하니 4권 1질로 됐으며 3000여 벌을 박아 냈다”고 말하고 또 “「성찰기략」은 60여 장이 1권으로 된 책이나 1000여 권 박아 내었다”고 말했다고 남아있다.

하느님의 종 최양업(토마스) 신부는 1851년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에 “조선의 알파벳은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배우기가 아주 쉬워서 열 살 이전이라도 글을 읽을 줄 안다”며 “한글은 천주교 전파에 큰 도움이 되어 신부님의 강론과 가르침을 대신해서 산골의 순박한 자들도 빨리 천주교 도리를 배울 수 있다”고 적어 당시 한글로 된 서적들이 복음전파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줬는지 알렸다.


■ 한글을 퍼뜨린 한글 교회서적

베르뇌 주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목교서인 「장주교윤시제우서」(1851년)를 통해 “교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언문(한글)을 배우든 한문으로 배우든 글자를 배우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며 교회서적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울 것을 권장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신자들이 능하게 하는 세 가지 일 가운데 첫째로 한글 사용을 들기도 했다.

선교사였던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따르면 “조선말로 된 장례식 기도문과 예절을 공포한 뒤로 많은 신자가 외교인(=비신자)을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공공연히 행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글 교회서적은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보급돼 한글 자체를 퍼뜨리게 된 것이다.

〈 신앙선조들이 읽은 한글 서적 〉

◆「성경직해광익」

한문으로 된 「성경직해」와 「성경광익」 중 주요한 부분을 합친 필사본으로, 전례에 따른 성경과 묵상, 해설이 담긴 책이다. 역관이었던 복자 최창현(요한)이 한글로 번역했는데 이미 1801년 신유박해 당시에도 박해자들이 압수한 책 목록에 한글로 된 성경직해광익이 포함돼있었다.


◆「주교요지」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리서다. 상·하 두 권으로 이뤄진 「주교요지」는 천주의 존재, 사후의 상벌, 영혼의 불멸, 천주의 강생, 구속의 도리 등을 설명하고 있다. 책은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864년 목판본으로 간행돼 널리 보급됐다.


◆「성찰기략」

성 다블뤼(안토니오) 주교가 저술한 고해성사 준비를 위한 성찰서다. 고해성사와 죄, 성찰 등을 다루고 있으며, 천주십계, 성교사규, 칠죄종 등의 각 조목을 나열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천주성교공과」

1969년 「가톨릭기도서」가 간행되기까지 한국교회의 공식기도서로 사용되던 책이다. 성 앵베르(라우렌시오) 주교가 번역하기 시작해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 성 다블뤼 주교와 성 베르뇌 주교 등이 보완하고 정리·완성해 1862년부터 목판으로 인쇄되기 시작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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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9-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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