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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로 만난 하느님] (21)‘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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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모든 형태의 생명, 무엇보다 인간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물은 인간세계에 다양한 가치를 부여한다. 성경에서 물과 관련된 도상을 살펴 보면 ‘노아의 홍수’나 ‘요나 이야기’에서 물은 혼란과 죽음처럼 모든 것을 뒤엎거나 삼켜 버리는 거대한 물결을 상징하고 있다. 반면 ‘사마리아 여인’이나 ‘그리스도의 세례’를 보면 물은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생명이며, 죽음과 재생을 상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생명의 의미를 지닌 물’의 의미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의 시카르라는 한 고을에 이르렀을 때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몹시 피곤하고 갈증이 난 예수는 물을 긷는 여인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한다. 당시 유다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반목 질시했다. 유다인은 그 지역에 가지도 않고 그곳 주민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달랐다. 오히려 예수는 지상의 목마름에만 집착하는 여인에게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고 이 물이 깊은 곳의 갈증을 풀어준다고 말한다. 예수는 그녀에게 자기가 그녀가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드러낸다. 사마리아 여인은 고을 사람들에게 가서 메시아를 만났다는 것을 알리고, 그들은 예수를 믿게 되고 그들의 삶은 변화된다.


■ 목마르지 않는 물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많은 화가가 선호하는 주제 중 하나다. 이미 3세기 로마 카타콤(Catacomb) 내부 벽화에서 이 주제를 찾아볼 수 있다. 4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비아 라티나(Via Latina) 카타콤의 사마리아 여인 장면은 최상의 보존 상태는 아니지만, 등장인물과 배경이 명확히 묘사돼 있다. 오른쪽 예수는 전형적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표현한 방식을 차용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아름다운 그리스 소년이나 헬레니즘의 목가적 모습으로 표현했다. 젊은 청년의 모습은 영원한 젊음으로서 예수의 전지전능함을 표현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배경은 목가적 풍경을 연상케 하는 바위와 나무다. 커다란 우물 사이에는 예수와 물동이에 물을 담는 사마리아 여인이 선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예수는 1세기경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입기 시작한 달마티카(Dalmatica, 직사각형을 반으로 접어 양쪽 팔 밑을 직사각형으로 잘라내고 가운데 머리가 들어갈 부분을 ㅡ자나 T자, U자 또는 원형으로 파서 만든 것) 형태의 옷을 입고 있다. 두 사람은 현세와 영혼의 갈증을 풀어 줄 생명의 물에 관해서 대화하고 있다.

여행으로 피곤한 예수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특별한 장소, 우물을 선택한다. 벽화 중심부에는 원형의 우물이 그려져 있다. 우물은 가정이나 가축을 위해 물을 푸는 곳이다. 또 우물은 여행자의 만남의 장소이자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머무는 여행자들과 새로운 소식을 교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우물은 중요한 만남의 장소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사악의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종을 떠나 보낸다. 아브라함의 종과 레베카가 처음 만난 곳이 우물이다. 또한 야곱이 라헬과 처음 만난 곳도 우물이다. 이들은 우물 가까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구원의 대역사를 펼치게 된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우물은 예수를 만나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사마리아 여인은 왼손으로 물을 긷고 있지만, 오른 손가락으로는 우물을 가리키며 예수께 질문하고 있다. 예수는 오른손을 들어 물에 관해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서 퍼 올린 물은 우리의 일상적인 목마름을 가라앉히는 물이지만, 예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의 물을 준다고 전한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3-14) 예수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샘이 되고 거기에서 물이 솟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우물을 화면 가운데 큰 형태로 표현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무덤에 묻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이 상징하는 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주는 물은 결정적 구원에 대한 목마름을 풀어줄 생수의 이미지다.


■ 새로운 삶을 주는 물

예수께서 주는 물이 어떤 것인지는 13세기에 제작된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성당의 내부 모자이크 작품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수는 오른손으로 축복하고 있고, 왼손으로 로고스를 상징하는 두루마리를 들고 앉아 있다. 그의 앞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들고 서 있다. 이들 사이에 놓인 우물은 정방형의 십자 형태로 특별하게 묘사돼 있다. 우물 뒤에는 잘 자란 나무도 서 있다.

물은 예수와 여인의 대화에서 세례를 연상케 하며, 십자 형태의 우물은 세례대를 떠오르게 한다. 세례를 통해 낡은 사람은 물에 잠김으로써 죽고, 물속에서 나와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상징한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사도 바오로가 로마인들에게 전한 말처럼 사마리아 여인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무 기둥이 우물과 연결돼 잘 자라고 있듯이 그녀는 영원한 생명인 예수와 연결돼 새로운 삶을 찾았기에 더는 물을 퍼 올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자이크 오른쪽의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 없이 고을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만난 것을 알리고 있다.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0-1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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