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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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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짚어 보는 재(灰)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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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머리에 재가 얹어지면, 신자들은 ‘사순 시기에 들었음’을 실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의 시작. 우리 머리 위에 얹어지는 재(灰)가 지나온 길을 되짚으며 사순 시기의 의미를 묵상한다.


■ 재의 예식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

창세기 3장 19절의 이 말씀과 함께 머리에 얹는 재는 신자들이 참회와 속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순 시기를 묵상하게 해준다.

‘재를 바르는 예식’은 준성사에 해당한다. 사제는 재를 축복하고, 신자들의 머리 위에 얹거나 십자 형태로 바른다. 재를 얹을 때 사제는 창세기 3장 19절이나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을 말한다.

재의 예식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게 해주고 참회와 슬픔을 느끼게 해준다. 신자들은 이를 통해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되새기면서 삶과 죽음의 모든 권한이 하느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 타오르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할 재를 만들기 위해 각 본당은 재의 수요일을 앞두고 1~2주 전 즈음 나무를 태워 재를 만든다. 태우는 일에는 특별한 예식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주의사항이 한 가지 있다. 예식에 사용하는 하얀 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무를 완전히 태워야 한다는 점이다. 채 타지 못하고 검게 그을린 나무를 골고루 태워주는 것이 요령이다.

재가 지닌 상징적인 의미는 속죄에만 있지 않다. 재는 완전히 타고 남은 것으로 ‘단련’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재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자신을 다 태워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탈 수 있는 것을 남김없이 모두 태움으로써 하느님을 닮게 창조된 순수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함을 알려준다. 또한 재가 땅에 뿌려지면 토양을 비옥하게 하듯이 재를 받음으로써 신앙을 키우고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함께해야 함을 상징한다.

■ 십자가 옆에서

재의 재료가 되는 나무는 성지(聖枝)다. 전국의 각 본당은 사순 시기가 다가오면 한 해 동안 신자들이 각 가정에서 보관하던 성지를 수거한다. 신자들이 한 해 동안 성지를 보관하는 장소는 주로 십자가다. 신자들은 십자가의 윗부분이나 십자가 뒤 등 십자가 인근에 보관하면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성지를 마주한다.

십자가는 신자들이 사순 시기에 특별히 묵상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잘 형상화한 성미술품이다. 교회는 “십자가 나무 위에서 거룩하신 당신 수난으로 우리에게 의로움을 얻어 주셨다”(트리엔트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고 고백한다. 우리가 묵상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18항)

■ 호산나!

성지의 시작은 사순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과 그의 수난을 기억하는 주일이다. 신자들은 이 주일에 나뭇가지를 들고 행렬을 하거나 환호하고, 사제가 뿌린 성수로 축복된 나뭇가지는 ‘성지’라 불리게 된다.

성지는 보통 종려나무나 올리브나무를 사용하지만, 종려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자생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의 편백나무나 쑥백나무, 소나무 등을 이용하고 있다.

성지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백성들이 승리와 존경의 표시로 흔들던 나뭇가지를 재현한다. 성지 주일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담고 있지만, 성지는 최후의 승리(묵시 7,9)를 상징한다. 즉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얻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이 사순 시기의 끝자락에서 신자들의 손에 건네진 성지는 신자들 가정의 십자가 곁에서 한 해를 보내고, 재로 다시 태어나 사순 시기의 시작에서 신자들의 머리에 얹어진다. 재는 그 시작인 성지로서도, 끝인 재로서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을 알린다. 재(灰)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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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2-1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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