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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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나

원진숙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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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장희원



내가 원목으로 일하는 프랑스의 한 병원에 입원한 조엘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가슴이 무너지는 의사의 통고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던 순간이었다. 그의 방문을 노크했을 때 그 와중에도 조엘은 들어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마음이 산란함을 감추지 않은 채 “다 끝장났다는 통고를 받은 지 10분밖에 안 됐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말을 계속했다. “이미 내 주치의가 내가 한 달밖에 더 못 살 거라는 말을 한데다가, 방금 내 혈액 검사 결과 항암 치료마저 받을 수 없다는 소식을 받았어요. 그럼 이제 끝난 거죠, 뭐.”

조엘의 나이 50. 아직 젊은데 유방암에서 시작된 암이 이미 다른 데로 많이 퍼진 상태였다. 간호사인 그는 자신의 병과 그 진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아파지면서, 그에게 생명이 한 달 남았다고 통고한 의사에 대해 화가 났다. 자기가 하느님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죽음을 예측할 수 있으며, 예측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대놓고 말을 하다니!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는 나에게, 조엘은 하느님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 “2년 전에 아버지가, 작년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8살밖에 안 된 내 친구도 죽고, 얼마 전에는 그 비슷한 나이의 내 직장 동료도 죽었어요. 이 세상에 부조리한 일들이 너무 많아요.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 전쟁으로, 사고로… 죄 없는 어린이들까지…. 그리고, 나도 아직 죽기에는 이른 나이 아니에요?”

나는 한동안 그의 계속되는 푸념을 듣다가 “지금 정말 어려운 시기이네요. 그 누구에게도 인생이 쉬운 건 아니지만, 조엘은 지금 특별히 어려운 시기에 있네요. 조엘을 위해 기도할게요” 하며 일어섰다.

“그러세요, 하느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실는지 모르지만….” 반쯤 냉소적으로 대답하는 조엘을 뒤로 하고 병실을 나섰다.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무능력을 절감한 적이 수없이 많지만, 이번에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나의 가난을 절실히 느끼면서, 하느님께 조엘을 맡겨 드리며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다음에 만났을 때도 조엘은 저번과 비슷한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하느님이 내게 해 주신 게 별로 없어요. 난 형제도 없이 쓸쓸하게 자랐고, 지금도 친구가 얼마 없어요.”

“그렇다면 조엘은 하느님께 뭘 해드렸나요?”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그가 “하느님이 주신 생명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살아오는 동안 무수한 은혜를 받았을 거”라는 말도 입술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원목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 환자의 말을 격려하는 것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의 말을 더 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느님이 어떻게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날 좀 더 살게 해 주시든지, 아니 죽어야 하면 죽겠지만 고통이 두려워요. 아, 하느님이 왜 그냥 가만히 계시냐구요?”

“그럼 조엘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믿고 있나 보죠?”

“아뇨.”

“계시지도 않은 분에게 원망을 하는 거예요?”

“계실지도 모르지만… 믿은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하느님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시지는 않았어요.”

“하느님에 대해 화가 나 있군요. 화를 내도 괜찮아요. 하느님께 외쳐도 돼요. 이왕이면 아주 큰 소리로 외치세요. 하늘까지 들리게…. 하느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하세요. 그것도 기도예요.”

“사람들이 내가 미친 줄 알게요?” 하며 조엘이 웃었다. 웃고 나니 마음이 좀 풀리는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조엘은 어렸을 때 세례를 받았지만, 기억에도 없는 일을 엄마가 말해 주어서 알게 된 것뿐이고, 부모님이 거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로 성당에 다닌 적은 별로 없으며, 20대 초반에 어찌어찌하다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7년을 지냈는데, 그 생활이 불행하게 느껴져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나마 그때는 성경도 읽고, 영적인 것을 생각하며 살았기에 그게 그런대로 힘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영적인 목마름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다음에 갈 때는 그에게 잡지 몇 권을 들고 갔다. 처음부터 종교적인 것을 들이대면 거부감을 일으킬까 봐서, 가톨릭 잡지이면서도 다른 화제들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갖다 주었다. 그러면서 그 내용을 주제 삼아 대화를 더 늘려나가는 동안, 조엘은 처음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졌다. 그리고 혈액 검사를 다시 한 후 마침내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자 그의 태도는 더욱 누그러졌다.

그에게 성경을 권하고 싶던 참에 마침 조엘이 물었다.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인 거 맞아요?”

“그건 조엘이 직접 읽으면서 느껴 보세요. 나는 하느님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왜, 무엇을 부정하는지 알기 위해 일단 성경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조엘이 성경을 빌려 달라고 했다. 성경을 주면서 내가 말했다.

“일단 한번 쭉 읽어 보세요. 이해가 안 가거나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그냥 지나가세요. 그러다가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으면 잘 새기시고요. 그러다 보면 그 말씀의 빛으로 앞에서 그냥 지나간 부분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 후, 나는 조엘에게 “신부님을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성경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삶에 대해서 신부님과 대화를 나눠 보면 어떻겠냐고, 나하고만 대화를 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폭넓은 대화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조엘이 이를 받아들이자, 나의 영적 지도 신부님께 조엘을 만나 주십사 부탁을 하여 만남이 이루어지고, 또 지속되었다. 신부님이 그에게 책 몇 권을 빌려 주시자, 조엘은 그 책들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어느 날, 조엘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 이 책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어요. 하느님도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 예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껴안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함께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요. 난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는 거군요!”

조엘은 이로써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도 그 말을 또 했다. “하느님이 우리를 알고 계시고 우리의 고통도 아신다는 거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너무나 기뻐요!”

나는 조엘이 이 기회에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소망하며, 주일 미사에 한 번 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미사에 정식으로 참여할 마음이 없으면, 그냥 구경삼아 한 번 와 보세요. 우리 수녀원이 병원 바로 옆이니 생각 좀 해 보고, 내일이 주일이니 이번에는 너무 빠를 것 같고, 다음 주일에….”

그런데 조엘은 바로 다음날 미사에 나타났다. 어린 시절에 미사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다음 주일에도 미사에 왔다.

나는, 내가 좀 너무 성급하게 밀고 나가는 건 아닌가 조심스러우면서도, 그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으니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기에,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조엘, 잔치에 가서 밥을 안 먹는 것은 좀 서운한 일이잖아요. 그러니, 난 조엘이 영성체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영성체를 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보면 좋은데 고해성사를 본 경험이 있어요?”



그는 첫 영성체 전과 그 후에 딱 한 번 고해성사를 본 적이 있을 뿐, 40년 동안 한 번도 고해성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죄에 대해서만 말하면 조엘을 죄인 취급하는 느낌을 줄까 봐서 말을 골라가면서 했다.

“조엘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면서, 은혜로웠던 일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리고, 맘에 걸리는 일, 가슴에 얹혀 있는 일, 용서해야 할 것, 용서받아야 할 것 등을 신부님께 말씀드리세요. 그리고 필요한 은혜를 하느님께 청하시고요.”

조엘은 순순히 신부님을 만났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본 후,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 내 인생, 새로 시작이에요. 생명이 얼마 안 남은 이제서야 새로 시작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정말 기뻐요. 아! 이제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 주일 미사 때 조엘은 성체를 영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기쁨이란!!

그가 매주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신부님과 내가 번갈아가며 조엘을 만났다. 조엘은 신부님이 빌려주시는 책들을 열심히 읽고 그에 대해 신부님과 나에게 질문도 하고 토론도 했다.

한 달밖에 못 산다던 조엘은 두 달도 넘게 입원해 있으면서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하루는 조엘이 큰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자기가 하느님과 성당을 멀리하고 살아오는 동안에도 항상 소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가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이 좋아지면 꼭 한 번 성지에 가 보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미지수라고….

그래서 나는 곧 다가오는 ‘암-희망’ 루르드 순례에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 순례는 암 환자들과 환자의 가족들, 그리고 암에서 치유된 사람들을 위한 순례인데, 자원 봉사자들이 환자들을 동반해 주고 보살펴 주기 때문에 웬만하면 조엘도 이 순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엘은 관심을 보이며 즉시 신청을 했다.

그런데 이 순례 조직은 매년 한 번 루르드 순례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순례 참석자들이 지역별로 매달 모임도 하고 있었으므로, 조엘은 신청을 하고 나서 바로 그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건강도 차츰 나아지고, 그 모임을 통해 좋은 친구들, 더구나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병상련의 친구들을 얻게 된 조엘은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병 ‘덕분에’ 자신의 삶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조엘은 퇴원한 후에도 주일마다 우리 수녀원으로 미사를 왔고, 미사 후에는 나와 함께 정원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신앙생활, 그리고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신부님과도 가끔 면담을 계속했다.

프랑스 루르드 순례를 하고 돌아왔을 때 조엘의 얼굴은 환희로 빛나고 있었다. 잊지 못할 좋은 시간이었다고, 깊은 은혜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서, 어느 날 오후에 조엘이 갑자기 찾아왔다. 자신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들고 얼굴에는 기쁨의 홍조를 띠고 거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암 자국이 다 없어져 안 보인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기뻐서,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얼른 케이크를 만들어서 달려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요!!!!!”

조엘은 외치듯이 이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리고 조엘은 한 달 동안 새 친구들, 새로운 식욕, 새로운 계획들에 가득 차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좋아하는 예쁜 연보라색 옷도 사고, 행여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비록 늦은 나이이지만 결혼도 생각해 보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그의 소망이 실현되기를 나도 같이 소망했다.

그러나 어느 날 조엘은 다시 입원했다. 암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항암 치료를 받기 힘들 만큼 혈액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고 하면서, 기운이 빠져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은 확실히 믿어요”라고 힘주어 말하며 “죽기 전에 주님께서 내게 신앙을 주시고, 한 달 동안의 행복도 선물로 주셨어요. 사실 죽는 건 그다지 두렵지 않아요. 저 세상에 가서 부모님과 먼저 간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기쁘기까지 해요. 그런데 아쉬운 건, 내 인생에 내가 별로 보람 있는 일을 한 게 없다는 거예요. 하느님이 내게 시간을 좀 더 주신다면 적어도 2년 정도는 무의촌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하고 싶어요.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았던 건 아닌데, 실천에는 옮기지 못하고 살아왔군요” 하며 말끝을 흐린다.

삶의 끝자락에 와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아쉬움이나 회한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랴. 오늘을 마지막 날인 듯이 살라는 말이 생각나면서, 나도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좀 기운을 회복했다가 다시 상태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고 있던 조엘은, 어느 날 아주 가라앉은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항암 치료를 마냥 계속할 수는 없어요. 이달 말까지 하면 끝이에요. 내 몸이 이 치료를 더 이상 받아내지를 못하거든요. 한동안 쉬었다 다시 하게 될는지, 이것으로 끝일지 알 수가 없어요. 어쩌면 이달이 내 삶의 마지막 달일지도….”

그러면서 말할 기력도 없다면서 힘없이 대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무렵, 조엘과 비슷한 나이, 비슷한 상태의 여환자 둘이 입원해 있었는데, 둘이 같이 병자성사를 청했다. 그래서 조엘에게도 그들과 함께 병자성사를 받겠느냐고 물었더니, 거의 반갑다는 듯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둘과 만나 인사하고 친구가 되어, 셋이 함께 성경 구절과 성가를 선택하는 등 준비를 한 후 기쁘게 병자성사를 받았다.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그 후에도 조엘은 그들을 자주 만나며, 자신의 고통은 뒷전으로 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병자성사의 은총인 듯, 모처럼 이렇게 기운을 찾은 조엘은 이제 평화의 사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조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복음 말씀처럼 겨자씨가 큰 나무로 훌쩍 자란 것을 보는 것 같은 감격과 감사가 솟아올랐다.


▲ 삽화=장희원



하루는 병실로 들어서는 나를 조엘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반겼다.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미소!

“하느님께 말씀드렸어요. 수채화 20장 그릴 시간을 달라고요. 20장이 안 되면 적어도 12장만이라도…. 제 그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그다음에는 저를 데리고 가셔도 좋다고요. 지금으로서는 매일 그림 그리는 데만 마음을 쓰고 싶어요.”

모두 꽃 그림만을 그릴 거라면서, 나에게도 한 장 그려 줄 텐데,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미모사 꽃을 좋아한다고 하자 “아, 그건 장미나 백합보다 그리기 어려운데 그래도 그려볼게요” 하며 방긋 웃는다. 그의 마음속에 이미 20송이 꽃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조엘의 현재 상태로서는 불가능한 무의촌 진료의 꿈이 이처럼 실현 가능한 꿈으로 바뀌고,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기쁨으로 생기를 찾은 조엘을 보며 나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조엘과 함께 병자성사를 받은 분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 죽음이 조엘에게 남의 일 같지 않을 게 틀림없었고, 자기 죽음을 보는 것 같았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나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조엘은 하늘나라에 친구를 두게 되었으니, 그에게 기도하세요. 그가 도와줄 거예요”

그러자 조엘도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하늘나라에 친구가 많아요. 아무튼, 내가 꼭 믿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절대로 혼자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깊은 신뢰에까지 조엘을 키워 주신 주님! 주님께서 우리 삶의 골목 골목을 함께 걸으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 깊이 느껴진다.

“주님, 앞으로도 조엘, 그리고 우리 모두와 늘 함께 계셔 주소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리고 이 세상과 작별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그 시간에, 그 후의 영원한 삶 속에…. ”



원진숙 마르가리타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 원진숙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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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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