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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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일] 김대건 성인의 삶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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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목구 제3대 대목구장인 페레올 주교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 소식을 전해들은 뒤 추도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이면 어느 누구나 그의 열렬한 신앙심과 성실한 마음에 존경심과 사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일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고, 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조선교회에서 그를 잃은 것은 큰 슬픔이자 불행이 됐습니다.”

1846년 9월, 한강가의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 스물여섯 해의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이 땅에 남긴 신앙의 씨앗은 여전히 한국의 신자들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열렬한 신앙심과 신앙을 지키기 위한 용기를 보여준 김대건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일(7월 5일)을 맞아 그의 삶과 영성을 살펴본다.



■ 천주께서 선택하신 아이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여 대대로 순교자를 낸 천주교 집안의 아이.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와 굳센 성격, 진실한 신심을 드러냈던 김대건 신부에 대해 모방 신부는 “이 아이는 아마 천주께서 선택하신 아이 같다”고 평가했다.

1836년 열 다섯이 되던 해에 세례를 받은 김대건은 모방 신부가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자 “남의 영혼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힌다.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던 예수님의 길을 알고, 그 모상을 따르려는 의지로 가득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자 했던 어린 소년의 의지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그 길로 다른 두 소년과 함께 마카오로 떠난 김대건은 사제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마카오에서 4년간 라틴어와 철학, 신학을 공부한 김대건 신부는 조선으로 들어가기를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만주에 들른 김대건은 북경으로 가던 신자 김 프란치스코를 만나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기해박해로 아버지는 참수를 당하고 어머니는 거지꼴로 교우집을 다니며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을 지켜야 할지 기로에 놓였을 상황. 그 순간 그는 조국의 불쌍한 영혼들을 구해야겠다는 신념을 더욱 굳히게 된다. 김 프란치스코로부터 앵베르 주교가 기록했던 박해의 기록과 모방신부와 샤스탕 신부의 편지, 목자를 보내줄 것을 청한 교우들의 편지를 받은 김대건은 그 길로 조선에 있는 메스트르 신부를 만나기 위해 변문을 향해 떠난다.


■ 내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에 들어가 신앙을 전파하고자 했던 김대건 신부의 기백과 용기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김대건 신부가 마지막 서간에 남긴 ‘온갖 마음으로 천주 예수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 마귀를 칠지어다’라는 말을 통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장, 즉 으뜸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김대건 신부가 그리스도를 자기 모든 것의 주인으로 인식했다는 것도 이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임금으로부터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김대건 신부는 “임금 위에 또 천주께서 계시어 당신을 공경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니 그의 배반함은 큰 죄악이라, 임금의 명령이라도 옳은 일이 될 수 없습니다”라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우위를 용감히 증거했다.

김대건 신부는 자신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셨다는 것을 행위로 증명했다. 그는 남을 위한 희생을 실천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허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마카오와 조선 국경 근처를 수없이 헤매면서도 하루 빨리 신부가 돼 조국에 들어가기를 갈망했다. 또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김대건 신부는 마지막 서간에서 ‘우리는 미구에 전장에 나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라는 말을 남겼다. 이를 통해 김대건 신부가 죽음 앞에 굴복함이 없이 자기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에 대해 기쁨의 감정도 함께 느꼈음을 알 수 있다.

김대건 신부가 참수될 당시, 칼로 여덟 번 목을 친 뒤에야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목을 치기 위해 얼굴에 물을 뿌리고 회칠을 한 뒤 무릎을 꿇려 머리를 잡아당긴 상황에서 김대건 신부는 말한다. “이 모양으로 하고 있으면 칼로 치기가 쉽겠느냐? 자, 준비가 다 되었으니 쳐라.” 죽음 앞에 이같이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은 후에 영복을 얻고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김대건 신부가 우리에게 전하는 신앙의 핵심은 ‘이웃 사랑’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김대건 신부 역시 이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했다. 김대건 신부는 아홉 번째 서간에서 ‘인류는 대가족’이란 말을 언급한다. “인류라는 대가족의 공번된 부친인 천주께서 당신 모든 자녀들을 형제와 같이 결합하게 하시고 인류에 대한 당신 성자의 무한한 사랑 속에서 서로 친구처럼 지내게 할 날은 어느 때나 오려는지오”라는 김대건 신부의 말을 통해 그가 이웃이란 개념을 개별 민족으로 국한하지 않고 범인류를 향해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아홉 번째 서간에는 타민족에 관한 상세한 보고를 작성, 그가 인류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는 순교를 앞둔 순간까지 교우들에게 이웃 사랑을 강조했다. 그는 교우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서간에서 ‘나는 비록 갇힌 몸이 돼 곧 죽을 것이지만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사랑으로 도우며 천주께서 새로운 목자를 보내주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한몸을 이루다가 모두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같이 살자’라고 표현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했던 김대건 신부. 희생과 사랑의 가치가 퇴색하고 있는 지금, 김대건 신부가 전하는 이웃 사랑의 가르침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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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6-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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