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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새 회칙 「모든 형제들」, 무엇을 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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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0월 4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를 비롯한 다양한 어려움에 고통 받고 있는 인류에게 새 희망을 제시하는 회칙 「모든 형제들」을 반포했다.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이 회칙은 코로나19 대유행을 비롯해 전쟁과 빈곤, 이주와 기후변화, 경제위기와 전염병으로 점철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인정하고, 형제애와 연대로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길 당부하고 있다. 사회교리 전문가인 박동호 신부 글을 통해 새 회칙이 갖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감시탑들과 방어벽들이 수없이 들어선 그 시대, 세계의 도시들은 강력한 가문들 사이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무대였습니다. 지방 곳곳에는 가난이 휩쓸고 있을 때였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프란치스코는 참 평화를 자기 마음에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려고 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이 회칙을 낳게 한 것입니다.”(4항)

800여 년 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감시탑과 방어벽이 수없이 들어선 세계는 바로 오늘날 ‘폐쇄된 세계’와 같다. 또 강력한 가문들 사이에 벌어졌던 수많은 전쟁 무대인 도시들과 가난이 휩쓸고 있는 지방 곳곳 현실은 ‘어두움 짙게 드리운 구름’ 곧 암운과 같다. 회칙 제1장 ‘폐쇄된 세계에 드리운 암운’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밝힌 ‘더 넓은 맥락’을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꿈과 희망은 부수어져 버렸다. 인간관과 세계관의 심각한 왜곡에 기인한다. 인간은 편리한 대로 이용하다가 용도를 다하면 버려도 되는 ‘물건’이 됐다. 세계는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정치적이든 경쟁의 무대일 뿐이다. 경쟁 그 자체가 세계를 움직이는 역학이 되어 ‘세계화’와 ‘진보’를 이루었으나 슬프게도 거기에는 인류를 안내할 ‘도로 지도’가 없다. 지배와 복종, 소외와 자기 경멸의 암운이 짙다. 지혜는 없는 정보의 홍수가 한 몫을 더한다.

하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호기가 왔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과 다른 재난들은 ‘사람’에 대해, 또 그 사람들이 건설하는 ‘세계’에 대해 철저히 다른 시선으로 볼 것을 촉구한다. 사람은 낯선 남이 아니라 나의 살, 곧 혈육이며, 세계는 투쟁이 아니라 ‘형제적 사랑’과 벗으로서의 사랑, 곧 ‘사회적 우애’가 펼쳐지는 무대다.


■ 새 희망의 원동력, 형제애와 우애

회칙은 “무시해서는 안 될 암운이 드리워져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의 경로를 취하고 토의하고 싶어 한다.”(54항) 그 희망의 실마리를 ‘위대한 두 계명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5-37)에서 찾으려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이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서로 낯선 이지만 동시에 이웃이다. 신앙의 시선으로는, 낯선 이웃을 넘어 공동의 아버지 자녀들, 서로에게 ‘형이나 누나나 동생’, 곧 ‘혈육(flesh)’이다. 형제자매의 상처 입은 그 살을 보고 다가가고 만지고 싸매야 하며 또 그 몸을 일으켜 세워 돌봐야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마음과 태도와 삶이야말로 ‘암운’을 뚫고 비추는 새로워진 ‘희망의 빛’이다.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가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영성’을 교회의 영성으로 삼아 ‘쇄신과 적응, 원천에의 귀의(전환)’를 호소했다.

회칙은 교회의 그 영성을 토대로 제3장부터 8장까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빛의 줄기”를 모색하고 “행동 노선들을 제안한다.”(56항) 이는 역사의 무대에서 인류를 하느님께 안내하는 교회 사명 수행의 길, 곧 ‘현실의 실재들을 보고, 성찰하고, 제안하며 행동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 구조는 다른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도 볼 수 있다.

간략히 소개하면, 과감하게 열린 세상을 꿈꾸고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사랑’, 곧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소개한다. 인간의 존엄과 인권의 증진을 강조하면서도 그 범위와 전망을 확장하여, 공동체 차원의 권리들 구체적으로 민족들의 권리를, 더 나아가 보편적 사랑의 책무를 제안한다. 실천적으로 ‘재산의 사회적 역할’을 다루는데, 이는 특히 우리 사회에 최근 떠오르는 의료, 주택, 노동의 기회 등 ‘공공성’ 문제를 성찰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백신과 치료제’ 연구와 생산과 공급과 관련된 현안에서도 이 ‘재산의 사회적 역할’이 국내외의 뜨거운 현안으로 떠오를지 모른다. 다시 폐쇄된 세계와 열린 세계의 또 다른 갈림길 위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다.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라는 ‘사랑’에서 자주 간과되는 측면 곧 ‘무상성’을 환기한다. ‘혈육’ 사이의 사랑은 ‘주고받기 셈법’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카리타스)에서, 또 사마리아인에게서 이 무상의 사랑을 찾으면서, 더 넓은 배경으로 세계(화)와 지역(화)의 관계, 전체와 부분들, 부분과 부분 사이의 관계에 이 ‘무상의 사랑’이 실현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 정치와 국제 공동체의 역할 강조

물론 그 실현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건전한 지역 사랑에서 출발한다. 당연히 받아들이는 ‘세계화’를 철저하게 재검토해 올바른 세계화와 지역화를 제안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로 회칙은 ‘정치’를 꼽는다. 나쁜 정치로 즉각적 결실을 내려는 ‘인기 영합의 대중 정치’와 ‘그릇된 자유주의’ 형태를 비판한다.

도전 과제로 부상한 그 암운의 규모와 본성에 비추어 볼 때 국제 공동체 역할이 절실하다. 정치를,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개념, ‘사회·정치적 애덕’의 실천으로 이해하는데, ‘올바른 질서와 제도 세우기’ 정도로 보아도 될 것이다. 앞에서 ‘사랑의 무상성’을 환기했듯이, 회칙은 국제 질서에서 강대국의 ‘양보’와 더불어 희생을, 특히 기후 위기의 현안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선진 또는 신흥 산업국의 생태적 부채 의식을 일깨움으로써 부채 상환의 ‘의무’까지 촉구한다.

이런 ‘올바른 질서 세우기’의 정치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건전한 문화’인데, 요약하면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 정신이 실현되는 ‘사회 차원의 만남과 대화’ 분위기라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만남과 대화에는 정치와 경제 문화의 현안, 환경의 현안, 제도와 질서와 법의 현안, 국제 질서와 평화 등이 주제가 될 것이지만, 언제나 ‘사회적 약자, 집단, 민족과 국가, 인종, 창조물 등의’ 시선으로 곧 ‘자비의 시선’으로 모든 현안을 바라볼 것을 호소한다. 그럼으로써 폐쇄를 개방의 만남으로, 전쟁을 대화로 대체하자는 제안이다.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실현하는 이 만남과 대화는 참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회칙은 평화 구축을 건축과 예술에 비유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건축가와 예술가로 비유된다. 특히 회칙이 평화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주목하는 현안은 역사의 아픈 기억과 용서, 세계 안의 전쟁과 사형제도다. 모두 건축가와 예술가의 작업처럼 고뇌와 창의성, 이상과 과감함, 연대의 정신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회칙은 종교 역할과 임무를 세계 평화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와 세계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강조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박동호 신부 (서울 이문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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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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