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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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그리스도인의 생명 밥상] 생명 농업을 일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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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흘러온 낙동의 강물이 상주를 향해 남으로 급히 굽어 흐르는 곳. 지도를 보면 강물이 감싸 안은 듯 자리한 땅이 경북 예천 풍양면이다. 낙동강이 사철 내어주는 넉넉한 물과 벼농사에 최적화된 찰진 땅. 예로부터 축복받은 땅이라 불렸다. 이곳에 ‘그리스도인의 밥상’에 오를 건강한 먹거리를 정성으로 키우는 농부들이 있다.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하늘과 땅 벗 삼아,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를 복음 삼아, 일평생 농부의 삶을 사는 안동교구 풍양농촌선교본당 정원해(바오로)·안희문(이시도로)씨다.

하늘·땅 벗 삼고 농부이신 하느님 본받은 60년

올해 일흔둘 동갑내기 두 농부는 이곳 풍양에서 60년 가까이 농사를 짓고 있다. 정씨는 10대 때 가장의 책임을 안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잠시 외지로 떠났던 안씨도 20대 초반 일찌감치 고향으로 돌아와 흙을 일궜다. 지금도 정씨는 3만3000여 ㎡의 논에서 쌀을 수확하고, 소를 키운다. 안 씨는 1만여㎡의 밭을 갈아 계절마다 양파와 쪽파, 콩, 참깨와 무 등을 생산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친환경 무농약 쌀 재배를 시작한 건 1991년. 일찍부터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며 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생명 농업의 필요성에 눈을 떴고, 그들의 땅에서 직접 실현해 도시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전하고자 했다.

“당시만 해도 농약을 참 많이 쳤어요. 독한 약 때문에 일하다 쓰러지거나 농약에 중독된 농민도 있었죠. 농약을 쓰지 않고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농업이 필요했고 누군가 시작해야 했어요.”

그렇게 마음을 모은 10여 명의 농민이 무농약 쌀 재배를 시작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모내기 후 보통 한 달은 꼬박 새벽부터 저녁까지 논을 맸어요. 허리 굽혀 땅만 보며 잡초를 뽑아댔지.”

제초제를 대신한 우렁이 사용 농법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 사용한 큰 우렁이는 식욕이 왕성해 벼까지 먹어댔다. 번식을 너무 잘해 골칫거리로 변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무농약으로 벼를 재배할 수 있었던 건 해마다 이곳을 찾아 부족한 일손을 보탠 대학생 농활단과 신학생들 덕분이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시작되고 도시와 농촌 간 교류가 활발해진 것도 힘을 실어줬다.

그렇게 30여 년. 친환경 쌀을 생산하는 농부는 처음 10여 명 중 둘만 남았다. 정씨가 우렁농법으로 생산한 유기농쌀과 안씨가 무농약으로 재배한 각종 채소는 예천군 학교급식센터를 통해 학생들의 식탁에 오른다. 일부는 가톨릭농민회를 통해 도시의 우리농매장으로 보내진다. 두 농부를 중심으로 만든 영농조합법인 ‘연자방아’에서 생산한 쌀은 2019년부터 서울 마포구 등의 학교 급식용 쌀로 납품되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로 인정받았음에 보람이 크다. 하지만 씁쓸함도 있다.

밥 한 그릇 고작 260원, “누가 생명 농업을 이어가겠습니까?”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무농약, 농약뿐 아니라 화학비료조차 쓰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기에는 어려움이 참 많아요. 남들은 고작 한 시간 농약 치고 나면 끝인데 우리는 그 열 배, 열 시간 스무 시간을 잡초와 씨름해야 비로소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어떨 때는 다 ‘치아뿌리고’ 싶은 유혹도 받아요. 나이가 들어 허리, 무릎 곳곳 성한 데가 없는데 정작 이 농사를 이어갈 젊은 농부들도 없으니 걱정이 큽니다. 매일매일 내년에는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안씨의 걱정에 정씨가 이야기를 잇는다. “목수 하루 일당은 30년 전에 비해 열 배가 올랐는데 쌀값은 그대로예요. 지금 쌀값으로 환산하면 식탁에 오르는 밥 한 그릇이 고작 260원입니다. 빵 한 조각도 2000원, 커피 한 잔은 4000원인데 어떻게 쌀이 이런 대접을 받습니까.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 맞나 싶어요. 이런데도 정부는 농산물 수입을 늘리고 농민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니 누가 과연 농촌에서 깨어있는 정신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키우겠습니까.”

고개 숙인 벼 낱알 하나하나에 스민 농부의 땀, 그 소중함 되새기며…

가을 한복판 10월. 중순부터는 추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풍양 벌판에 너른 황금 카펫이 깔렸다. 음력설이 지나 유기소똥을 뿌려 건강해진 땅에 3~4월에는 낙동의 물을 대고 5월 말 모내기 뒤 우렁이를 넣어 키운 벼가 이제 수확의 시간을 기다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일 년의 수고를 떠올리면 벼 낱알 하나하나가 농부들의 굵은 땀방울로 느껴진다. 추수를 앞둔 논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두 농부에게 일 년 중 가장 보람 있는 때를 물었다. 모내기 후 20일 무렵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면 농약 친 논과 우리 논이 멀찍이서 봐도 표가 나요. 농약을 쓴 논은 물이 아주 맑아요. 물속에 생물이 없어서죠. 반면 우리 논은요, 탁하다 싶을 정도로 뿌옇죠. 투구새우 같은 생물과 여러 미생물들이 바닥을 휘저어 그런 것이죠. 와~ 살아있구나. 그 모습을 보면 우리 논이 정말 살아있음을 느껴요.”

농부이신 하느님을 본받으며 ‘살아 숨쉬는’ 논을 일구고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헌신해오고 있는 농부의 땀을 생각하며 오늘 우리 밥상에 오를 한 그릇의 쌀밥, 그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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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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