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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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70)복음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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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교회

교회의 성장은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20세기 후반부에, 세속화라는 거센 파도를 넘어, ‘종교의 귀환’이라 불릴 정도로 종교가 활발해지는 것 같았다. 유럽교회를 제외하고 세상의 모든 교회는 성장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1990년대 한국교회는 팽창의 정점을 이뤘다. 하지만 21세기 탈세속화 시대에 뜻밖에도 종교가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한다. 한국교회 역시 수축되고 있다. 물론 사목자의 개별적 역량에 힘입어 성장하는 본당도 있다. 또한 인구 유입과 인구 밀집도의 확장이라는 사회적 요인에 의해 성장하는 교구도 있다. 하지만 교회의 전반적 흐름은 성장보다는 수축의 시기에 도달한 느낌이다.

위기는 늘 근본적 질문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을 위한 교회인가? 정체성과 사명에 관한 질문이다. 정체성과 사명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하나이다. 교회는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선교하는 교회가 곧 교회의 정체성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 인식하고 그것을 재구축하는 일이 위기의 시대에 응대하는 교회의 방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든 노력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교회는 그 본질상 선교적 교회라는 인식과 신념,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한 교회 내부적 쇄신으로서의 시노달리타스를 향한 노력 말이다.

팬데믹 이후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교회 현상과 흐름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분석과 전망 역시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교회 수축의 시대에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서 선교적 교회로의 복귀, 교회 안 소모임의 활성화, 교회 운영과 통치 방식의 재구성을 주장하고 있다.(「한국교회 트렌드 2024」) 사실,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은 개신교나 우리나 비슷하다.


■ 복음화, 선교, 사목

교회는 복음화를 위해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의 사명과 활동은 선교와 사목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어왔다. 복음화라는 개념은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복음화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교회가 선교를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를 심는 일”(선교 교령, 6항)이라고 정의할 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복음화로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복음화를 선교의 한 요소로서 이해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선교의 개념이, 서구중심주의 문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식민지주의 경향을 지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다. 「현대의 복음 선교」(1975)는 복음화 개념에 대한 총체적이고 새로운 이해를 제공했다. 「현대의 복음 선교」 이후 복음화라는 개념은 교회의 사명과 활동을 총망라하는 개념으로 자리하게 된다. 복음화에 대한 바뀐 이해는 선교 활동을 복음화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게 했다. 즉, 복음화로서의 선교를 강조한다. 선교의 한 요소로서의 복음화가 복음화의 한 요소로서의 선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복음화는 교회의 사명과 활동의 3가지 측면 모두를 포함한다. 복음화는 “신앙인들이 영적 성장을 지향하여 그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더욱더 온전하게 응답하도록 돕는” 일반 사목과 “세례를 받았지만 세례의 요구대로 살지 않은 이들”이 회개를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복음화(재복음화)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또는 여전히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외방 선교) 모두를 포함한다.(「복음의 기쁨」 14항)

복음화, 선교, 사목은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음화, 선교, 사목이라는 개념은 교회의 사명과 활동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게 한다. 선교와 사목에 관한 전통적인 이해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 활동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복음화에 대한 변화된 이해는 교회 활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평신도 참여 영역을 확장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복음화라는 개념은 선교와 사목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것으로서 다양한 측면에서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촉진할 수 있는 신학적 용어로 자리하게 된다.


■ 교회의 복음화 - 시노달리타스

교회의 존재 방식과 작동 방식에 따라 복음화의 방식도 달라진다. 오늘날 복음화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교회의 존재 방식과 작동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사실, 교회가 존재하는 모습, 교회가 움직이는 모습 그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증거가 된다. 교회의 존재 방식과 작동 방식은 복음화 수행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지만, 그 자체로서도 복음화 수행의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서 복음화가 이루어지지만, 또한 동시에 교회는 자신이 존재하는 방식을 통해 복음화를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교회 구성원들의 복음화, 교회 구조의 복음화를 통해 복음화를 더 잘 증거하고 수행할 수 있다. 세상의 복음화와 교회의 복음화는 늘 함께 간다.

교회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율적인 공간이 아니다. 교회는 언제나 시대와 문화의 영향 속에 있다. 교회는 당대의 문화로부터 많은 것을 빌려온다. 하지만 교회는 그 빌려온 것을 복음의 관점에서 낯설게 하고 새롭게 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창출한다. 구조, 관계 방식, 통교 방식 그 모두를 새롭게 창조한다. 시노달리타스는 교회 안의 구조와 관계 방식과 통교 방식을 새롭게 하여 복음화 사명을 더욱 잘 수행하려는 교회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시노달리타스는 세상 안에서 교회의 복음화 사명 수행을 더 효과적으로 하려는 교회의 노력이다.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히 기능적인 차원에서 교회 작동 방식의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존재 방식과 활동 방식에 새로움을 불어넣으려는 노력이며, 영성적이고 사목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교회 방식을 추구하려는 노력이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교회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이며, 신학적이고 문화적이고 제도적인 다양한 형태의 복음화 사명 수행 모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복음화의 목표가 단순히 교리를 교육하고 제도로서의 교회를 형성하는 데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복음화의 총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질 때, 복음화의 구체적 실천 방식에 관한 생각들도 달라질 것이다. 복음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가질 때, “수많은 교리를 두서없이 전달하고 이를 끈질기게 강요하려고 집착하지” 않을 것이고 “본질적인 것에, 곧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크고 가장 매력적이면서 가장 필요한 것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복음의 기쁨」 35항)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교회의 복음화를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절이다. 변화와 쇄신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것인지, 기존의 방식으로 살다가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인지?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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