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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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26) 일상 안에서의 시노달리타스 - (상) 너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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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공동체의 비극

시노드 교회 만들기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노드 교회 혹은 함께 가는 길이 일종의 교회 운동이 된 데에는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지금 시노드 교회 운동의 배경은 동일하다.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문화에 일정 부분 교회가 적응하면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교회의 사명을 발견하고 수행하기 위해서다. 현대사회의 변화된 모습과 교회의 문화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화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교회의 빛은 자연스레 소멸해 갈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시노드 교회 운동은 일념통천의 자세로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러면 현대사회의 다양한 변화와 양상들이 보여주는 보편적 특이점은 무엇일까?

다양한 개념어들로 표현된다. 예컨대, 포스트모더니즘, 다원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 수없이 많은 개념이 우리 사회를 표현하고 있다. 사회의 특성을 표현하는 이러한 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가치는 개인과 자유이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중요시되고, 개성이나 특이한 개인의 성향이 예전처럼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지기 위해 인정투쟁을 할 필요성이 약화돼 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과 교회의 공동체적 가치 혹은 전통 규범 사이의 충돌은 교회가 세상을 향한 복음화의 길에 있어 상당히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 안과 밖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수렴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가치들을 보존하고 구현할 수 있는가가 시노드 교회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다양한 개인들과 개별 조직의 욕망과 이익들이 한 공동체를 이룰 때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국제 공동체에서도 전쟁과 테러리즘이 발생하고, 개인 내지 작은 집단들 안에서도 갈등과 부조화가 발생한다.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 특성은 그래서 모순적이다. 개인의 생각과 가치가 존중되고, 동시에 다양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유토피아적인 이상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거미줄의 교훈

이러한 비극과 관련하여 아키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라는 일본 작가가 쓴 「거미줄」이라는 짤막한 우화는 우리 개인의 구원과 공동체 사이의 현실에 대한 가슴 아픈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산책하는데, 연꽃이 가득한 정원 연못 밑 저 아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는 다양한 죄인들이 어두운 심연에서 피범벅이 된 채 고통스러워하는 지옥이었다. 그중 칸다타란 인물이 눈에 띄었는데, 그는 과거에 도적이어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악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딱 한 가지 착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숲속을 지나다가 발밑에 작은 거미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순간 그는 거미를 밝으려다 생각하였다. “아니지, 아니야 비록 작지만 이것도 생명이 있으니, 자비를 베풀어 주어야겠다.” 부처님은 그의 과거 모습을 보시며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를 지옥에서 꺼내주기로 결심하였다.

부처님이 사방을 둘러보니 반갑게도 연꽃잎 사이에서 거미 한 마리가 은빛 실을 뽑아내고 있었다. “옳거니, 저 거미줄로 칸다타를 구해 주어야겠구나”하고 부처님은 손뼉을 쳤다. 하루는 칸다타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까마득한 하늘로부터 은빛 찬란한 거미줄 한 가닥이 가냘프게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자 칸다타는 “옳거니, 저 줄을 잡고 올라가면 지옥 밖으로 탈출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기쁨에 들떠 말하였다. 혼자 이렇게 생각하곤 두 손으로 거미줄을 움켜잡고 있는 힘을 다해 줄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올라가다 거미줄에 매달려 쉬면서 미소를 띠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시무시한 지옥의 심연이 까마득히 아래에 보이자, 그는 “되었어, 이젠 되었구나!”라며 들뜬 그의 마음을 표출하였다.

그런데 발밑으로 자세히 아래를 보니 수없이 많은 죄인이 거미줄 끝에 매달려 마치 개미 떼처럼 죽자 살자 기어오르고 있었다. 칸다타는 한참을 내려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을 뱉었다. “이 약한 거미줄은 나 혼자 몸으로도 끊어질 것 같은데 도대체 어쩌자고 저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리고 있는 것이냐!” 칸다타는 있는 힘껏 아래로 외쳤다. “야, 이놈들아! 이 죄인들아! 이 거미줄은 내 것이야! 누가 너희들보고 맘대로 이 줄을 잡으라고 했어? 내려가! 내려가란 말이야!” 바로 그 순간, 그때까지만 해도 끄떡없던 거미줄이 칸다타가 매달려 있던 바로 그 부분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끊어져 버렸다. 칸다타는 순식간에 지옥 암흑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부처님은 하늘 위 극락 연못가에서 이것을 모두 보고 계셨고, 칸다타가 지옥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고는 몹시 슬퍼하였다.



구원은 너와 내가 함께 걷는 길을 통해서

칸다타의 교훈에서 ‘함께 가는 교회의 길’이 일반적인 목적과 방법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구원론적인 속성을 담지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교회라는 이름 안으로 수많은 특이성을 갖는 개인들이 함몰될 수 있기에, 교회는 이번 시노드를 통해 모든 교회 성원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여기에 준거하여 경청하면서 교회 생활과 사명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들을 논의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신자 개인들의 생각은 어떻게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교도권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각자의 경험, 생각, 신앙 전통의 숙지 정도가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교회 생활과 사명의 길은 신앙 전통에 준거한 신자들의 살아있는 신앙에 대한 상호 간의 확인을 통해 발견될 수 있다. 또한 교도권은 교회 전통의 보고를 신자들과 나눔으로써 우리 신앙의 사도적 정통성이 무엇인지를 신자들에게 알려줌으로써, 크고 작은 교회 내 공동체들이 성령의 뜻에 부합하는 식별과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길은 나 혼자 그리고 소수의 교회 그룹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안녕, 평화 그리고 구원의 빛을 추구하지만, 나 혼자 할 수 있고, 나 혼자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칸다타처럼 암흑 속으로 떨어진다. 시노드 교회의 핵심은 다양한 의견들을 효과적으로 조율하고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바로 내 구원의 길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로 인식하는 데 있다. 시노달리타스 교회는 하느님을 향한 여정이 바로 너와 내가 함께할 때 가능한 것임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예언자적 목소리(복음화)를 세상에 던져줄 수 있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목표가 다양한 개개의 욕망을 절충하고 타협시켜 질서를 유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과 다른 타자의 세계와의 만남 안에서 나의 완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통찰을 던져 주었으면 좋겠다.




최영균 시몬 신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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