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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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가난한 이의 날 특집] 주거 취약계층 위한 교회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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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노동 후의 안식처, 기초 인간관계를 맺는 공간으로 사회활동과 자아실현의 기본 바탕이 된다. 인격체로서의 인간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 이상의 개념이기에 헌법에서도 주거권을 인권으로 명시한다.
한편 집을 재산 증식의 통로로만 간주하는 인식이 고질적이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는 전세사기 문제 접근 방식도 집을 소유권 중심으로 잘못 다루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보편 인권으로서의 집에 대한 무관심 속, 최대 피해자인 주거 취약계층은 어떤 위기에 놓여 있을까.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공간에 사는 그들의 어려움과, 그들을 위해 어떤 교회 사목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주거 취약계층, 그들의 고충

“모든 게 열악해 노숙보다 조금 나은 정도예요. 사람다운 환경을 누려보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자포자기했죠.”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주민들과 공동체를 이뤄 반빈곤 연대활동을 펼치는 동자동사랑방 교육홍보이사 차재설(65)씨. 2009년부터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그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쪽방촌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지적했다. 주택법에서 정하는 최저주거기준은 1인 가구의 경우 부엌을 포함한 방 1개, 총 면적 14㎡(약 4.2평)다.

4평이 안 되는 협소한 공간 때문에 가장 불편한 점은 소음 문제다. 옆 방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볼륨을 1칸만 올려도 옆 방 생활자와 실랑이가 빚어지는 건 다반사다.

쪽방들 사이 복도와 골목이 협소한 것도 큰 불편이다. 노후화된 방이라 벽지에 곰팡이가 잘 슬어 봉사자들이 벽지를 새로 발라주려고 해도 공구 등 물건을 내놓을 곳이 없으니 먼저 거절한다. 창문이 없는 쪽방도 많은데 곰팡이가 방치되면 천식, 비염, 과민성 폐장염 등 기관지 질환의 원인이 된다.

부엌이 없어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도 없다. 전기밥솥을 방에 들여놔도 냉장고가 없으니 반찬을 뒀다가 차려 먹지도 못한다.

“국수 같은 건 먹고 싶어도 못 먹어요. 방에서 국수를 삶더라도 헹구려면 샤워실에서 헹궈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씻고 있으면 그러지도 못하죠.”


개인 화장실과 샤워실은 꿈도 꾼 적 없다. 차씨가 사는 건물은 층마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 한 칸뿐이다. 한 층에 사는 6~7명 생활자가 변기 하나와 세면대 하나를 나눠 써야 해 급할 때는 다른 층 화장실을 이용하게 된다. 화장실 사용 문제는 층간에 다툼을 일으키는 민감한 일이라 조심하려면 인근 공원 화장실까지 먼 길을 가야 한다. 냉난방도 개인 의사와 무관하게 관리자가 임의로 일괄 조절한다.

“세탁기, 냉장고도 좋지만 가스레인지와 거실이 있는 집에 살아보고 싶어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금융협동조합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 정대철(45)씨는 “주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외로움과 단절감”이라고 말했다. 공간도 부족하거니와 소음 때문에 못 부르는 손님을 초대할 거실, 손님과 차 한 잔 나눌 가스레인지가 있다면 소원이 없다는 것이다.

차씨도 “사랑방에 나오지 않으면 쪽방에 혼자 갇혀 라디오를 듣는 게 일상”이라며 “적어도 주민들이 혼자 버려지지 않고 함께하는 공간에서 숨통만은 트고 살게끔 시민들께서 관심을 모아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떠나지 못하는 이유

더 나은 생활환경을 위해 주거 취약계층이 돈을 벌어 스스로 떠나는 건 동화 속 얘기다. 특히 주거 취약계층 중에서도 신체 부자유, 심신의 아픔으로 정상적 노동이 힘든 상당수 사람에게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중학교 시절 중증 복막염과 함께 앓은 척추 질환이 악화된 차씨와 중증 지체장애인인 정씨 모두 노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차씨가 매달 받는 생활수급비와 주거지원비를 합쳐도 100만 원에 못 미친다. 한편 동자동 일대 쪽방촌 월세는 주로 20~30만 원에 형성돼 있다.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비를 대기도 빠듯한데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아는 사람 없는 낯선 곳으로 선뜻 떠날 엄두도, 더 높은 월세를 감당할 엄두도 나지 않는 것이다.

일할 능력이 있는 주거 취약계층도 기존 생활공간을 벗어날 엄두를 못 내는 건 마찬가지다.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목과 허리 디스크로 14년 전 서울 대학동 고시촌에 들어온 50대 황씨도 “떠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황씨는 고시촌에 살면서도 호텔 컨시어지 등 여러 아르바이트로 본인 생계를 유지하고 양친을 간병했다. 지금은 1인 가구 및 주거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모니터링 및 방문, 건강관리 등을 지원하는 돌봄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주거급여 대상자도 아닐뿐더러 일정 소득과 재산이 있는 황씨가 고시촌을 떠나 주택에 입주하면, 월세뿐 아니라 세금과 건강보험료까지 모든 비용이 급증해 황씨가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을 벗어난다.

황씨는 “소득이 있어도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이사해도 고시촌 안에서 옮겨 다닐 뿐”이라며 “결국 사회적 단절, 고립을 벗어나지 못해 공황장애처럼 정신적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단절 극복, 권리 회복을 위해

보편 인권으로서의 주거권 보장 미비로 ‘주택 이외의 거처’로 밀려난 주거 취약계층. 그들이 박탈당한 주거권은 이렇듯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단절과 고립의 굴레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스스로 조직해 자발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도록 이끄는 사목을 펼치고 있다.

사목활동의 목표는 주민들에게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 줌으로써 그들이 생활권(최소한의 의식주), 사회권(공동체 의식),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나충열 요셉 신부, 이하 위원회)는 2021년 독거 중장년 쉼터를 넘어 마을공동체를 형성하는 공간인 ‘참 소중한…’ 센터를 세우고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고시원 거주 1인 가구 빈곤상황 대응 프로젝트 ‘대학동 프로젝트’에도 동참하고 있다.

위원회 대학동 고시촌 담당이자 ‘참 소중한…’ 센터를 운영하는 이영우(토마스) 신부는 “위원회 존재 목적은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해 권리 문제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일방적 시혜만 하는 복지 활동과는 다르다”고 역설했다.

이어 “가난을 비난하는 세상을 피해 홀로 숨어든 가난한 이들을 단절에서 구하는 것이 권리 회복의 첫걸음”이라며 “우리가 먼저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찾아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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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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