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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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700m 산행과 흙바닥에 무릎꿇고 심야 기도하는 성지 순례

[선교지에서 온 편지] 페루에서 차명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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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 성지 뒤편 언덕을 오르며 묵주 기도를 하는 아름다운 신자들.



찬미 예수님! 저는 수원교구 소속으로, 2019년에 사제품을 받고 현재 남미 페루에 있는 시쿠아니교구에서 선교 사제로 활동하고 있는 차명준 헨리코 신부라고 합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시쿠아니교구는 안데스 산맥 중 3500m에 위치해 있는 교구입니다. 주변 교구로는 많은 분들께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들리는 쿠스코대교구가 있습니다. 시쿠아니교구의 전체 면적은 강원도보다 조금 큽니다. 교구청에서 가장 멀리 있는 성당은 차로 약 6시간 정도를 가야 할 정도로 넓습니다. 하지만 교구 사제 수는 저와 같은 외국인 선교 사제를 포함해 26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제 수가 적다 보니, 사제들 간의 일치를 위한 모임도 자주 있고, 대부분 모임에 시쿠아니 교구장 주교님께서 함께하시기도 합니다.



일 년 동안 이뤄지는 여러 모임들 중 교구 사제 전체와 많은 교구민이 참여하는 행사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아쌈블레아’(Asamblea)라는 교구 전체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는 교구장 주교님을 포함해 각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교리교사와 상임위원들이 모여 교구 일정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를 합니다.

두 번째 ‘왐뽀 왐뽀(Huampo Huampo) 성지’를 순례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구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한 교구의 전 본당이 성지순례를 동시에 함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시쿠아니교구는 면적은 크지만, 대목구에서 교구로 승격된 지 3년밖에 안 된 작은 교구이기에 교구 내 모든 본당이 함께 성지순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숨이 차오르는 고산 언덕길 올라

지난해 9월 22~23일 1박 2일간 ‘왐뽀 왐뽀 성지’를 향해 교구민 전체 참여하는 성지순례가 있었습니다. 이곳 시쿠아니교구에서 선교 사제로서 첫해를 보낸 저는 본당 수녀님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몇몇 어른 신자들과 함께 교구 성지순례에 다녀왔습니다. 1박 2일간 이뤄지는 성지순례의 첫 일정은 ‘왐뽀 왐뽀 성지’를 관할하는 리비따까(Livitaca)본당에서 시작했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교구 면적이 넓다 보니, 리비따까까지 가는 데만 3~4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오후 5시쯤 리비따까성당에 모여 본격적인 성지순례에 임하게 됩니다.

먼저 교구장 주교님의 시작 기도와 인사 후 수녀님들께서 성지로 행렬하며 이날 부를 성가를 알려주십니다. 리비따까성당에서 왐뽀 왐뽀 성지까지는 행렬을 하며 도보로 이동하게 됩니다. 맨 앞에 성모상을 모신 차가 천천히 움직이며, 그 뒤로 주교님과 사제단, 수녀님들과 신자들이 성지까지 걸어갑니다. 약 3시간가량 걸으며 행렬하게 되는데, 중간부터는 계속 언덕을 올라야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언덕을 한 시간 반가량 오른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지칠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해발 3500m에 교구청이 있고, 왐뽀 왐뽀 성지는 3700m에 있기 때문에 한 시간 반가량 언덕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 밑까지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묵주 기도를 바치고, 성가를 부르며 성지까지 행렬합니다.
 
왐뽀 왐뽀 성지에 도착해 신자들이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성체현시를 하고 있다.


성체 현시, 성모 기념일 축하

왐뽀 왐뽀 성지에 도착하면 곧이어 성체현시가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에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한 시간가량 성가를 부르며 성체 현시를 합니다. 사실 3시간 동안 행렬했기에 발과 무릎, 온몸이 피곤할 만도 한데, 시쿠아니교구 신자들은 그저 묵묵히 성가를 부르며 성체를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성체 현시가 끝나면, 본당별로 준비해온 식사를 합니다. 이후 본당별로, 그리고 공동체별로 준비한 공연을 함께 관람하기도 하고, 서로 손잡고 춤을 추며 12시가 되길 기다립니다. 12시가 되면 생일 축하 노래와 엄청나게 많은 양의 폭죽을 터트립니다. 9월 23일이 왐뽀 왐뽀 성지에 모셔져 있는 성모님의 기념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면, 성지순례에 참여한 신자들은 각 성당에서 혹은 각자 준비한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사실 저는 성직자들을 위한 방을 교구에서 따로 마련을 해줘 건물 내 공간에서 잠을 잘 수 있었지만, 많은 신자들은 3700m 고산 지대에서 텐트와 담요만으로 추위를 이기며 잠을 청했습니다. 텐트조차도 없는 신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야외에서 담요 몇 장에 몸을 맡기며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6시에 모두가 기상합니다. 이렇게 일찍 기상하는 이유는 교구장 주교님과 함께 성지순례에 참여한 모든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함께 성지 뒤편 작은 언덕을 오르며 묵주 기도를 바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성지에 모셔져 있는 성모님의 기념일 미사를 교구장 주교님 주례로 거행하며, 이 미사를 끝으로 1박 2일간의 성지순례를 마치게 됩니다.

 
미사 후 교구장 주교님과 교구 사제단의 기념 촬영.
미사 후 성지 성당 앞에서 함께 단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하느님 현존 느껴

이틀에 걸쳐 왐뽀 왐뽀 성지 순례에 참여하며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습니다. 이 성지순례에는 편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각 성당에서 심하게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3~4시간 달려 첫 모임지인 리비따까에 도착한 것. 그리고 3시간을 꼬박 고산지대에서 행렬하고, 또다시 한 시간 동안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성체현시를 해야 했습니다.

고산의 매서운 추위를 텐트와 담요로만 이겨내며 밤을 지낸 뒤 아침에는 새벽같이 언덕을 다시 올라 묵주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열악했던 것은 음식이었습니다. 첫날 저녁에는 다 식은 음식을 먹어야 했고, 이튿날 아침은 간단한 차와 빵, 그리고 치즈가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이틀 동안 편한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왐뽀 왐뽀 성지 순례에 참여한 것에 모두가 하나같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시간, 교구장 주교님을 중심으로 교구 전체가 하나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조금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왔을 때 하느님을 잊지 않고 찾는다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후원 계좌 : 신협 131-002-040468

예금주 : (재)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


 
차명준 신부


차명준 신부 / 수원교구 / 페루 시쿠아니교구 성베드로·성바오로본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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