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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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민 자녀들과 함께 살며 부모 자립 돕는 ‘이모 수녀들’

신년 특집 / 북향민 자녀들 돌보는 그룹홈 ‘아녜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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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의 집 원장 조 소피아 수녀와 박 제네로사 수녀가 그들이 돌보는 북향민 자녀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2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개최한 ‘2023 북향민과 함께하는 성탄제’에서 수녀의 품에 꼭 안겨 있는 한 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수녀와 아이는 “우리 엄마예요”, “내 자식입니다”라고 하듯 서로 사랑의 눈길로 바라봤다.

이들은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북향민(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을 돌보는 그룹홈 ‘아녜스의 집’(분원장 조숙자 수녀) 가족이다. 아녜스의 집은 돌을 갓 지낸 아이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에 이르는 북향민 자녀를 보살피는 곳으로, 2019년 3월 개원했다. 현재는 4명의 아이가 분원장 조숙자(소피아) 수녀와 박외숙(제네로사) 수녀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있다. 만 5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부모와 자식처럼 사랑을 채우며 살아가는 서울 광진구의 ‘아녜스의 집’을 방문해 새해의 희망을 찾았다.
 
아녜스의 집 막내 빛나가 ‘핑크 이모’라고 부르는 박 제네로사 수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가 된 이모 수녀들

“다녀왔습니다~”, “외투 벗고 손 씻어야지”, “조금만 이따가요”, “어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첫째 수아(7)가 여느 아이들처럼 바로 손 씻기를 거부(?)했다. 그래도 수녀는 온종일 수업받느라 힘들었을 수아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옆에선 다섯 살 동갑내기 두 남자아이와 세 살 막내가 색색의 장난감 놀이에 여념 없다. 누가 봐도 여느 다복한 가정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매달 한 번 2박 3일가량 가정에 다녀온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 아이들의 삶은 모두 수녀들과 지낸다. ‘제2의 가족’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은 이처럼 부모 역할을 대신해주는 두 수녀를 ‘이모’라 부른다. 분홍색을 가장 좋아하는 막내는 수녀를 ‘핑크 이모’라고 부르는 등 어느새 자기들끼리 지은 별칭도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아녜스의 집에선 웃음소리와 애정 가득한 잔소리가 방안을 오갔다. 하지만 그늘 한 점 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얼굴 뒤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갈라진 한반도의 상처가 새겨져 있다.

“조각배를 타고 라오스 메콩 강을 건너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아이가 있었어요. 악어를 실제로 보기도 했고요. 엄마도 힘들어서 아이를 혼내느라 손찌검을 하고 말았는데, 그걸 기억하더랍니다. 상처로 남은 거죠. 엄마에게 아이가 중학교 갈 때까지 계속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엄마도 힘들어서 그랬다는 사실도 전하면서 말이죠. 다행히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조 수녀는 무엇보다 마음을 읽어주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나 겪지 못할 ‘탈북’이라는 경험을 한 아이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이를 위해 아녜스의 집 후원자이자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음악수업과 미술수업을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에는 속상한 일, 고마운 일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감정 나누기’ 시간도 갖고 있다.

“작은 유리 볼에 물을 받아 초를 띄워놓고 노래도 틀어줍니다. 서로의 마음을 읽고 나누는 시간이죠. 상처로 얼룩졌던 아이들이 점점 밝아지더라고요. 지금은 어딜 가든 구김 없이 잘 지냅니다.” 남모르게 어두웠던 마음 한켠을 밝히고, 구겨졌던 심리를 다림질하듯 펴주는 것이 이모 수녀들의 역할이다.
 
기도하자는 말에 성모상 앞으로 달려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조 소피아 수녀가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다.

목적은 부모의 자립

‘북한 이탈주민의 자립과 자활을 위해 그들의 자녀인 유아들을 건전한 어린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녜스의 집 설립 목적이다. 아이를 돌보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동시에 부모의 적응과 자립을 지원하는 게 아녜스 집의 존재 이유다. 조 수녀는 아이를 입소시키기 전 부모와 꼭 중요한 상담을 한다. 부모들이 자립을 위해 열심히 공부에 임하거나 직업을 갖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다.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돕는 차원에서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들은 약속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녀들이 아이를 돌봐주는 동안 기초생활수급자를 벗어나는 가정도 있고, 고생 끝에 간호사가 된 엄마도 있다. 이모 수녀들의 정성스러운 사도직이 북향민 가정을 바로 세우는 힘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소식 들을 때 가장 뿌듯합니다. 가족이잖아요.”
 
아녜스의 집 아이들이 수녀들을 위해 준비한 성탄 카드.

건전한 어린이로 자라주렴

무엇보다 북향민 자녀를 건전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녜스 집의 가장 큰 사명이다.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JPIC(정의ㆍ평화ㆍ창조보전)분과 위원이기도 한 조 수녀는 아이들에게 지구 환경의 중요성을 생활 곳곳에서 교육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가르치는 족족 지구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이제는 ‘지구 지킴이’가 다 됐다. 본원에서 직접 키운 싱싱한 채소를 좋아하고, 놀러 가면서 휴게소에서도 또래 다른 친구들이 고기를 찾을 때, 아녜스의 집 아이들은 비빔밥을 주문한다. 유치원에서도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단다. 오죽하면 유치원 교사가 먹기 싫으면 남겨도 된다고 했는데, 되려 “그럼 지구가 아파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수아양은 “지구를 지키는 수녀가 되는 게 꿈”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수녀를 보며 자란 아이의 3년째 변하지 않는 꿈이다.

밤 9시가 되면 한국 교회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 바치기’에도 동참하고 있다. 아이들이 그 의미를 얼마나 알까. 그러나 수녀가 기도하자고 하자, 너도나도 성모상 앞에 모여 해맑은 미소로 고사리 같은 손을 모은다. 지금은 묵주 기도에도 재미가 들렸다고 한다.

수녀회 차원에서 올해 비전은 ‘여성성으로서의 모성성 회복’이다. 박 수녀는 “이곳에서 온종일 아이들과 뒤섞여 지내다 보면 모성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회복할 수 있다”며 “건전하고 밝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다”고 밝혔다.

수녀회 창설자 고 이우철 신부(1915~1984)는 해방 전후 극심한 사회적 혼란 속에 어려움을 겪던 소년들을 위해 기꺼이 사제관을 내줬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년들의 수가 늘어났고 그들을 위한 보육원인 성심원이 설립됐다. 이 신부는 수녀회 회원에게 늘 “불우한 소년들의 어머니가 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창설자의 영성은 분단의 오랜 세월을 거슬러 2024년 새해에도 아녜스의 집에서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어려도 다 느끼고 있습니다. 때론 또래 아이들보다 너무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 마음이 짠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건전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너무 잘 자라줘서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후원 계좌 : 농협 351-5887-5883-23 (재)파티마의성모프란치스꼬
후원 문의 : 010-5130-5883, 조숙자 수녀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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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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