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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병자의 날 특집] 호스피스, 삶을 아름답게 완성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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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입을 맞춘다. 다 큰 아들이 머리 위로 정성스레 만든 하트를 보고 엄마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레임은 60년이 지나도 그대로였고, 엄마가 갓 태어난 아들에게 보냈던 무한한 사랑을 이제 장성한 아들이 엄마에게 돌려 드리고 있었다. 동백성루카호스피스병원(원장 윤동출 프란치스코 신부) 1층 로비에 걸린 사진에 담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 끝을 알고 보니 마음 한켠이 먹먹하지만, 사진 속 주인공의 표정은 행복하기만 하다.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했던 추억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겪는 삶의 마지막. 원망과 괴로움이 아닌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흔적이 병원 한켠에 남아있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호스피스 돌봄을 이어온 교회의 노력 덕분이다. 살아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교회가 기꺼이 그들의 삶에 동행하는 이유가 됐다.

삶을 아름답게 완성시키는 동백성루카호스피스 병원

“말기암 진단을 받은 남편이 지내고 있는 병원이 천국처럼 느껴진다면 믿으시겠어요? 몇 주간 남편과 좋았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어요. 잘 준비된 죽음이 부활로 나아갈 수 있는 여정이라는 것을 이곳에서 알게 됐습니다.”

남편이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황에서 동백성루카호스피스병원에 오게 됐다는 김다희(비비안나·55)씨. 침대에 누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의 표정은 편안하고 안정돼 보였다. “병원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한마음으로 잘해 주셔서 불편한 게 전혀 없다”는 남편은 “이 병원은 축복받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수원교구는 2020년 5월 동백성루카호스피스병원을 설립했다. 호스피스 환자와 가족들이 삶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여정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입원할 수 있는 대상자는 전신상태가 악화되는 말기암 환자, 담당의사와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로부터 말기 상태를 진단받은 환자다. 따라서 이곳의 의료 서비스는 일반 병원(급성기 병원)과 다르다. 정극규 진료원장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곳에서 육체적 고통이 경감되고 난 뒤 답답함을 토로하며 빨리 죽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신다”며 “따라서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육체적 고통을 경감해 주기 위한 완화의료 서비스와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이 정신적·심리적·영적 고통을 줄여주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동백성루카호스피스병원은 의료진을 비롯해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성직자, 조정자(코디네이터), 사별가족전문돌봄가가 포함된 다학제팀이 긴밀히 연결돼 환자들을 돌본다. 자원봉사자들이 목욕과 말벗을 도맡고, 사회복지사는 임종준비와 관련된 정보 제공과 환자 소원 들어주기 프로그램 등으로 심리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게 돕는다. 생애말기 환자들의 가장 큰 고통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은 수녀와 사제의 몫이다.

영성부장 전혜진(다니엘라) 수녀는 “오랜 투병생활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커진 환자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곤 한다”라며 “그런 분들에게 저희는 지금까지 잘 살아오셨다고 격려하거나 주님이 축복해주시는 가운데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도록 기도하겠다고 위로의 말을 해드리면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준비하신다”고 전했다.

매일 오후, 1층에서 봉헌되는 미사는 동백성루카호스피스 병원만의 특별한 영적 돌봄 서비스다. 병원은 이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각 병실에서 TV로 미사에 참례할 수 있게 배려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성체를 영하며 환자들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아름다운 여정으로 한 걸음 더 가깝게 가닿고 있었다.


우리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은 여러 가지 형태로 죽음을 맞는다. 잠을 자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재해나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경우 죽음을 준비할 여유가 없지만 만성질환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인 3명 중 1명은 암을 경험한다. 2020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60대 사망자의 42, 70대의 35, 80대는 17가 암으로 죽는다.

투병생활 이후 임종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낼까. 중앙호스피스센터의 ‘연도별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률’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 8만2204명 가운데 23.0인 1만8907명만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했다. 나머지 6만 명이 넘는 환자는 요양병원이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임종했을 가능성이 크다.

요양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의료적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아니라면 생애말기 환자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돌봄을 받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국립암센터 조사에 따르면 암환자가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에 1주일만 입원해도 평균 통증이 10점 만점에 4점에서 2.9점으로 줄어든다. 일반 병원 치료를 받으면 증상 관리·삶의 질 등에 대한 만족도가 32인 반면,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으면 76로 상승한다.

생애말기 환자에게도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호스피스 병원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중 입원형 호스피스병동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울성모병원이 유일하다. 종합병원은 공공의료기관(7곳)을 제외하면 여의도성모병원과 은평성모병원 두 곳이 남는다.

호스피스 이용 가능 질환인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로 사망하는 연간 환자 수는 9만 명에 이르지만 2023년 4월 기준 전국 호스피스 전문 기관은 107곳이다. 병상 수로 따지면 1500여 개로, 환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종합병원이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재정적인 문제를 꼽는다. 환자들이 요양급여의 5만 부담하다 보니 다양한 돌봄을 위한 추가 비용을 병원이 떠안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은 다른 수익사업으로 적자를 메꿀 수 있지만 자본력이 없는 독립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경우 유지가 어렵다.

정극규 진료원장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치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존엄한 마지막을 위한 호스피스 돌봄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인력수가와 보조금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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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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