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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4) 강정 이야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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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나는 강정 문제와 관련하여 제주의 목자로 취할 선택을 결심하고 2007년 5월 제주교구민에게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며’라는 사목서한을 보냈다.

“제주는 4·3사건으로 무고한 생명 3만 명이 무참히 학살된 땅입니다. … 제주의 땅은 그들이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주의 땅은 그들의 희생을 거름으로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어떤 이유로든 인간들이 형제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기나 무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땅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4·3에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신 분들의 희생은 정말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이 사목서한에서 나는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에 지적된 세계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인식과 사명을 알렸다.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 언제나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 데에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의 낭비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막고, 민족들의 발전을 방해한다. 과잉 군비는 분쟁의 원인을 증가시키고, 분쟁이 확산될 위험을 증대시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15항)

“많은 국가들이 보호책으로 삼는 군비 경쟁은 평화를 확고히 유지하는 안전한 길이 아니며 또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균형도 확실하고 진실한 평화가 아니라는 확신을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한다. 군비 경쟁으로 전쟁의 원인들이 제거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차 증대될 수밖에 없다. … 군비 경쟁은 인류의 극심한 역병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군비 경쟁이 계속된다면 그 수단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가공할 온갖 재앙을 언젠가는 일으키고 말리라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여야 한다.”(「사목헌장」 81항)



이 사목서한 발표 후 교회 안팎으로부터 많은 이들이 공감과 연대의 의지를 보내왔다. 제주교구 사제단은 해군기지 건설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을 감행했다. 여러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와 평화 활동가들이 강정을 찾았다. 그러나 제주교구의 입장에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부 고위층 인사가 제주를 방문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고 대화는 평행선을 그었다. 정부 측만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생각이 다른 이들이 적지 않았다. 국책사업 특히 국가안보와 상관있는 군사기지 건설에 교회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데 대한 거부반응이 컸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확대될수록 제주 지역사회 안에서는 거의 꺼져가던 해군기지 건설 반대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강정 주민들도 큰 용기와 힘을 얻는 것 같았다. 또 전국 각지의 시민단체들이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며 세계 각국으로 강정마을 이야기를 발신하기 시작하였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강정을 찾아 여러 날 머물다 가는 방문객이 늘었다.


2009년 5월, 나는 강정과 관련한 두 번째 사목서한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한 호소’를 발표하였다. 여기서 나는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재고를 요청하며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군비 증강은 평화를 결코 보장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역대 교종은 한결같이 군비 증강에 의한 평화 유지에 분명히 반대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이는 교도권이 가르치는 교회의 사회교리에도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한 국가가 무기를 보강하면, 다른 국가들도 더욱 크게 무기를 보유해야만 합니다. 또한 한 국가가 핵무기를 생산하면,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파괴적 핵무기를 생산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성 요한 23세 교종 「지상의 평화」 110항)

둘째, 도민 3만여 명이 학살당한 제주는 평화를 배우는 섬이 되어야 하며 전쟁을 준비하는 기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주 4·3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두고두고 가슴을 치며 용서를 빌고 참회와 속죄의 발원을 하여야 할 피맺힌 역사입니다. 이런 제주 땅에 군사기지를 새로 건설하려는 것은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무위로 돌리고 그 무덤을 갈아엎는 행위나 다름없는 무지막지한 행위입니다. 제주를 총칼과 무력으로부터 정화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고인들의 희생에 늦게나마 참된 위로와 사죄의 제사를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강정 앞 바다는 제주에서 가장 청정한 해역이고 제주도민의 생명의 젖줄입니다.

환경은 인류가 공유하는 공동선의 터전이고 모든 인간은 이를 존중할 의무를 지닙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 「백주년」 40항) … 강정 앞 바다에서 발견된 연산호 군락지는 그곳 해양 생태계가 아직 살아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최근의 현지 탐사 결과 이곳은 군사기지 건설을 하기에 타당하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로 밝혀졌습니다. … 그러나 행정당국은 이러한 탐사 결과도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할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이는 이 나라 전체에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청정해역을 회복 불가능한 형태로 훼손하는 생태계에 대한 폭력입니다.

넷째,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인하여 강정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고 주민들 사이에 심각한 대립과 상호 적대감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제주의 지역사회는 본디 서로 문을 열어놓고 한 집안처럼 오가는 독특한 친교의 문화를 이어오고 있으며 아직도 길흉사를 함께하고 끈끈한 정을 나누는 인간관계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행정당국이 주민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해군기지 건설 계획으로 말미암아 마을 공동체에 금이 가고 한집안 안에서 서로를 외면하고 혐오하는 대결 관계가 형성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가상의 적에 맞서기 위하여 같은 마을 공동체에서 한 집안끼리 대립하는 일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해군은 이런 호소에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정부와 제주도가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지로 확정한 이후 9년이 지난 2016년 2월 강정 해군기지는 완공되었고 한국해군과 미해군의 전함들이 수시로 정박하다 떠난다. 강정 기지가 완공됨으로써 강정 기지 건설을 반대한 사람들의 모든 활동은 자동적으로 종료되고 더 이상 동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군함이 정박하고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지만, 강정에는 여전히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마을 회복을 위한 평화운동이 9년째 지속되고 있다. 평화로운 어촌과는 어울리지 않는 군사기지와 군함이 버티고 있기에 오히려 더 이에 대한 항의와 반대의 표징으로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프코 센터)가 세워졌다. 프코 센터는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여전히 매일 강정을 찾는 방문객들과 생명평화를 위한 길거리 미사가 거행되고, 인간띠잇기, 백배가 이어지고 활동가들은 콘크리트가 점거한 강정의 땅을 살리기 위해 땀 흘려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다. 활동가들은 이제 활동가가 아니라 강정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지킴이로 살고 있다. 강정은 끝나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이다.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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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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