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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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8) 이춘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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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헌신적 지원으로 화가의 꿈 키워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갓 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는 제가 이미 죽은 줄 알고 포대기에 싸서 밖에 내어놓았대요. 어머니께서 뒤늦게 제가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를 지켜보며 애간장을 녹이셨다고 해요.

몸이 허약해서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밖에 나가 뛰어놀지 못하고 집에서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책 안에 있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그런 아이였죠. 친구 중에 집이 책방을 하는 아이가 있어서 덕분에 거기 있는 책은 다 읽었어요. 무역 일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사다 준 책들도 있었는데, 서양미술에 관한 그림책이었어요.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제 시야와 세상이 넓어졌죠.

많이 배우시진 못했지만 총명하고 배포도 크셨던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크게 신경을 쓰셨어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고, 한 미술 선생님은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 화가가 되거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어머니께서는 선생님의 이 조언을 실현해 주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죠.

당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지면서 도쿄에서 유학하다 귀국한 학생들 중 제가 살던 목포로 들어와 일자리를 찾는 이들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오사카미술대학에서 공부했던 양인옥 선생님이 목포여자중학교에 미술 교사로 부임했어요. 이분은 나중에 호남대 총장도 지내셨죠.

어머니께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덕분에 양인옥 선생님으로부터 소묘를 비롯한 실기와 미술 기초이론을 5년 동안 배웠어요. 덕분에 195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무난하게 입학할 수 있었죠. 입시장에는 장발 학장님과 김종영·김세중 교수님께서 계셨는데, 어느 분께서 “이게 동경식 소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까지도 그 기억이 생생해요.


신앙으로의 초대

서울대 미술대학에 다니면서 장발 학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 대부분이 가톨릭신자인 것을 알게 됐어요. 식사하기 전에 성호를 긋는다거나 12시 정오가 되면 삼종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고향마을의 성당이 떠올랐어요. 동네 언덕에 지금은 산정동 준대성전이 된 목포성당이 있었어요. 성당에는 파리 외방 전교회 중심의 외국인 신부님과 수녀님이 있었죠. 집안에도 친구들 중에도 성당에 다니는 이는 없었지만 그들의 외모와 일거수일투족은 제게 경외의 대상이었어요. 당시 저의 세계는 책을 통해 목포를 넘어 프랑스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에는 수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생각한, 막연한 것이었지만요.

제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막내 여동생도 계성여고로 전학을 시켰는데, 그 일로 알계 된 수녀님 한 분이 있었어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명동대성당에 찾아가 그 수녀님의 안내로 예비신자 교리를 받았어요. 그리고 1959년 세례를 받았어요. 돌이켜 생각하면 그 누구도 제게 직접 성당에 다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성당 문을 열게 된 거였죠.



성미술의 세계로

대학 졸업 후 김세중 교수님께서는 여러 성당의 성물 작업에 저를 참여시켰어요. 당시 그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한번은 작업 중에 대학원 동기들과 해외여행을 가버렸어요. 나중에 이를 알게 된 교수님께서 노발대발하셨죠. 성물 작업 중에 놀러 다니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요. 그때부터 성물 작업을 할 때는 봉쇄수도원의 수도자처럼 모든 일상생활과 거리를 둔 채 고립된 생활을 했어요.

김세중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성물 작업은 1984년 서울 번동성당 세례대와 부활 촛대를 시작으로 계속 이어졌어요. 1986년 성 라자로마을 십자가의길, 1990년 천호성지 십자가의길을 비롯해 2000년에는 절두산순교성지에 대형 순교 기념비와 야외 십자가의길을 봉헌했어요. 감사하게도 천호성지 십자가의길로 가톨릭미술상도 받았지요.

2003년에는 명동대성당과 꼬스트홀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전신상과 흉상을 제작했는데, 그때는 좀 힘들었어요. 그동안의 작품과 차별되는 구상 조각의 인물상을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려웠죠. 당시 신부님 성상이 단순한 조각품이 아니라 신앙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신부님의 위대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상당히 공을 들였어요.

돌이켜보면 전국 요지의 성당과 성지에 제 성미술 작품을 봉헌한 것은 놀라울 뿐이에요. 고맙게도 대전교구 솔뫼성지에서 제 이름을 건 미술관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이고, 올 9월에는 광주대교구 광주가톨릭박물관에서 제 소장 작품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것 같아요. 주님께서 저를 철저하게 교육시켜 신앙의 도구로 이끄신 것 같아요.


■ 이춘만(크리스티나) 작가는…
1938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196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1980년 미국 뉴욕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독일 함부르크와 하이델베르크, 러시아 모스크바 등 국내·외에서 총 20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중에서 5회가 성미술 개인전이었다. 1990년 제2회 가톨릭 미술상 본상과 2017년 제31회 김세중 미술상 특별상을 받았다.







정리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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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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