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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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응급실 여성 청소노동자입니다”

[기획 특집] 세계 여성의 날에 만난 교회 내 여성 노동자 김순득(마리안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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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드러나지 않는 일이 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쉽게’ 드러난다. 마치 집안일처럼…. 사람들이 머물다 간 공간을 누군가는 쓸고 닦아야 한다.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줍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더러워진 것을 닦아내고, 어지러워진 것을 묵묵히 정돈하는 이들이 있다.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본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교회 내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다.
 

 

 

 

김순득씨는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의료폐기물을 치우고, 바닥을 닦으며 병상 정리를 한다.


“내가 닦은 자리가 빛이 날 때, 세수한 느낌이에요. 아시죠? 왜, 내가 내 얼굴 닦았을 때 그 반짝거림이요. 저는 이렇게 기도해요. ‘주님, 제가 마포질을 할 때마다 제 영혼의 때를 닦아주세요.’”

올해로 16년. 김순득(마리안나, 70)씨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 머문 세월이다. 2009년 서울성모병원이 개원할 당시 입사해 총무팀 소속으로 미화 담당을 해왔으니, 구석구석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터이다.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되기도 하는 응급실은 병원 직원들도 피하고 싶어하는 공간이지만, 그는 한결같이 응급실로 출퇴근했다.

 

그가 인생에서 가장 힌든 시기를 보낼 때, 하느님은 그를 이 일터로 보내주셨다.


“처음에는 (응급실이) 무서운 것보다도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었어요. 청소라는 일이 용기가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런데 딸 같은 간호사 선생님이 피 흘리는 환자를 처치하는 모습을 보고,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왜 이걸 못하겠느냐며 용기를 얻었죠.”

김씨는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일을 시작했다. 사기를 당해 평생 모은 재산을 잃었고, 두 아들을 키우며 나쁜 생각도 했지만, 하느님께 매달렸다. “돌이켜보니 그 힘든 시간이 하느님께로 가는 길목이었더라고요. 힘든 일이 없었더라면 하느님에게 매달렸겠어요?”

그는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한다. 응급실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알코올 솜, 주사기 포장재, 혈액이 묻은 거즈 등으로 가득 찬 의료 폐기물과 일반 쓰레기가 뒤엉킨 현장을 치우고, 환자들이 누워있던 침상을 소독한 뒤 다른 응급환자를 맞이할 새 시트를 깐다. 응급실은 조용할 날이 없다. 심정지·교통사고로 오는 응급환자들이 들이닥친다. 하루에도 심폐소생술 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한다. 흐느낌과 탄식과 오열·안도가 뒤섞이는 곳곳을 닦으며, 마음도 닦았다.

“일하며 많이 울었어요. 초등학생 아이가 축구를 하다가 심정지 상태가 됐어요. 같이 축구시합을 하던 아이의 부모들이 다 달려온 거예요. 그 아이는 안타깝게도 결국 떠났고, 그 부모들이 병원이 떠나가도록 울었던 일이 생생합니다. 출산한 지 며칠 안 된 산모가 떠났을 때, 그 남편이 얼마나 울던지요….”

그는 조용히 청소하며 기도한다. 많은 이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픔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며 침묵 안에 기도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이들, 남겨진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시신 근처에서 청소할 때는 하느님께 속삭인다. ‘이 영혼이 천국에 들게 해달라’고. 청소하며 기도를 하기에, 그에게 곧 청소는 기도하는 것과 같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늘 따뜻하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응급실에서 긴 세월을 보낸 만큼 그는 의사ㆍ간호사들과 가족처럼 지낸다. 대소사를 속속들이 꿰고 있다.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과도 언니·동생 하며 지낸다. “이렇게 나이 먹은 할머니한테 최저임금은 적지 않습니다. 욕심 안 부리니까 돈을 쓸 데가 없어요. 집을 사야 한다면 감사의 표현이 안 나올 거예요. 다 내려놓고 오늘을 감사하게 잘 사는 겁니다. 내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서 16년째 청소 일을 하는 김순득씨. 그는 청소하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다.


김씨는 출근하기 전에 항상 병원 성당에 들러 성체조배를 한다. 그는 “일터에 성당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응급실이 하느님이 불러주신 자리라는 것에 의심이 없다.

“감사한 게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배짱 기도를 해요. ‘오늘도 무탈하게 지내게 해주실 거라는 것을 믿고, 감사드려요’라고요. 그 기도도 들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또 감사해요.”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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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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