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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복음] 연중 제7주일 -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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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만 신부



주일에 피치 못할 일로 미사 참례를 못 한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오늘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무엇이었나요?” 남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아내를 힘껏 껴안아 주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감격한 아내는 다음날 새벽 미사가 끝난 후 본당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어제 강론 말씀이 너무 좋았나봐요. 저희 남편이 달라졌어요. 무슨 내용이었나요?” 그러자 신부가 대답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원수에 대한 복수를 미덕으로 삼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원수 같은 남편’, ‘원수 놈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아픔을 당했을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원수라는 대상이 가장 가까운 곳에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성경을 살펴보면 아담에게는 아내인 하와가 그랬고, 아벨에게는 형 카인이 원수였다. 야곱의 원수는 그의 형 에사오였고,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과 예수를 팔아넘긴 제자 이스가리웃 유다스를 들 수 있다. 사랑해야 할 원수라는 대상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기에 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원수를 대하는 모습에는 5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원수에 대해 칼을 품고 복수할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대부분 원수가 망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망한다. 둘째, 직접 복수하지 않더라도 원수의 멸망을 손꼽아 기다리는 단계다. 하지만 자기 마음만 불편한 상태에서 일도 잘 안 되고 오히려 원수는 더 잘 될 때가 많아 더 속상하다. 셋째, 편한 마음으로 원수의 종말을 지켜보는 단계다. 노자는 말했다. “스스로 원수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말고 그의 시체가 강물 위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라.” 이것은 원수가 정말 나쁜 일을 했다면 반드시 망할 테니 사필귀정을 믿고 편하게 지켜보라는 것이다. 넷째, 원수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잊어버리라는 단계다. 자기 할 일만을 생각하고 원수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원수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길은 원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섯째,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어렵다. 그러나 원수가 가까이 있다면 한번 해봄 직하다. 원수를 미워함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해 자신의 영혼까지 파탄 나게 할 것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기도해줌으로써 자신의 평화를 얻으라는 것이다.

다만, 원수에게 받은 손해와 상처는 어디서 보상을 받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나는 늘 손해만 보고, 부당한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의 문제이다.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로마 12,19)”라고 말했다. 복수는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더 큰 사랑을 위하여 원수에게 잘해주고 축복해주면 복수의 쾌감이 아닌 영혼의 행복으로 우리를 채워주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느님께 맡기면 모든 일을 가장 선하고 적절하게 처리해주신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수에게 ‘잘 대해주고, 축복하고, 기도해주는 것’뿐이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푸신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땅히 원수를 사랑하고 잘 대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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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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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장 132절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신 권리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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