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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71) ‘착한 목자’로 사십시오 / 장재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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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오늘 복음이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주신 일을 트집하며 “논란”을 벌이던 날, 곁에 있던 바리사이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임을 밝힙니다(요한 9장 참조). 그리고 이 말씀이 그들에게는 “다시 논란”의 빌미로 사용되었음을 전합니다.

세상은 늘 눈앞의 ‘기적’에 목말라하지만 예수님의 기적이 힘의 과시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라는 점을 고까워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존재를 확인하려 힘을 쏟으면서도 막상 그분께서 보여주신 겸손과 희생과 낮아짐의 삶을 마뜩잖아 합니다. 그분의 능력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비웃고 그분의 크고 위대하심을 의심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희생’을 하다니, 가당찮다 합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그분의 이름’을 부인하고 외면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더더욱 편협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의 지혜를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진리이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고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고 단언하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에 민감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방법이 각양각색이었으며 다양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곧잘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처럼 나타나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처럼 만나 주실 것을 고대합니다. 베드로, 바오로 혹은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처럼 나타나 주시기만 바랍니다. 이때문에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종교인이 아니라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립니다. 이때문에 종교적 규율에만 매달려 철저한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결국 주님께서 질책하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짧은 복음 안에서 “목숨을 내놓는다”는 고백을 네 번이나 들려주십니다. 두 번은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당할 것에 빗대시었고 두 번은 “목숨을 다시 얻는” 부활에 대한 언질입니다. 이 극명한 대비에서 우리는 전부를 내려놓는 십자가의 삶을 배웁니다. 목숨까지도 내어 놓아야 하는 죽음을 통한 부활의 길을 만납니다. 그분의 말씀 속에는 부르심에 응답한 성소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일이 곧 “권한”이라는 심지가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누리게 될 부활이야말로 성소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귀한 “권한”이라는 진리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일에 자발적으로 희생하고 적극적으로 헌신할 것을 다짐한 존재입니다. 이때문에 주님의 심중을 살펴 살아가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을 보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그 양들과 ‘함께 오라’ 명하신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분처럼” 착한 목자로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입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감시하는 사나운 눈초리가 아닌, 세상을 지배하려는 날카로운 발톱이 아닌, 오직 사랑하고 용서하고 오래 참아 그들을 감동시키기 원하십니다. 냉혹한 목소리나 혹독한 채찍으로 몰아치는 매몰찬 삯꾼이 아니라 앞장서 그들의 길을 살펴 이끄는 ‘착한 목자’로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토록 귀한 사명을 맡겨주신 까닭은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사랑의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건덩건덩 시간만 때우는 못된 삯꾼으로 살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잘 해낼 것이라 믿고 마음을 턱 놓고 계신 주님, 우리 모두가 묵묵히 사랑으로 “앞장서” 그분의 이정표로 우뚝 설 것을 의심치 않는 주님 마음을 헤아리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더 열심히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다는 사실을 전하고, 더 씩씩하게 그분 닮은 삶을 살아 내리라 다짐합니다. 진리에 눈 먼 이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리라는 각오를 세웁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꼭 해 낼 것입니다. 아멘.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활천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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