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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72) 최상의 열매 맺는 가지/장재봉 신부

부활 제5주일(요한 15, 1-8) 가지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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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일곱 번이나 “나는”이라는 표현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일들을 기록합니다. 그 시작은 “나는 생명의 빵”이라는 말씀이고 마지막은 “나는 참 포도나무”라는 오늘 복음 구절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상징적 묘사를 통해서 바짝, 우리 마음을 당신께로 당기고 계신 것을 느끼게 되는데요. 구약성경이 하느님께서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며 가꾼 포도밭과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하신 적이 많다는 걸 생각하니, 오늘 비유의 의미가 한층 깊이 다가옵니다. 혹여 “내가 무엇을 더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라는 시름에 잠긴 음성을 듣지 않을까?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이사 5장 참조)는 탄식을 듣지 않을까? 살피게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과 우리가 한 그루의 포도나무임을 밝히십니다. 가지는 곧 나무이기에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밝히십니다. 포도나무인 당신께 붙어 있는 가지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따로’가 아니라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한 알로 결실하는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실을 예로 들지 않고 굳이 ‘송이’일 때에만 가치가 있는 포도에다 비유하셨을까요? 하필이면 함께 붙어 있어야 하는 ‘포도’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리스도인에게는 개개인의 조건보다 중요한 것이 함께 모여 비비대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리스도인들의 친밀한 관계야말로 가장 소중한 교회의 모습이라는 일깨움이 아닐까요? 한 알 한 알이 그분의 지향으로 뭉칠 때, 가장 완벽한 교회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요? 자신의 위치에 연연치 않고 자신의 몫에 개의치 않고 당신을 중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도울 때에만 그분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한편 주님께서는 포도나무 가지를 딱 두 종류로 분류하신 점에도 마음이 쏠립니다. 그분께서는 길게 뻗어 도드라진 가지와 짧고 여린 가지를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굵고 튼실한 가지와 가느다란 가지를 구별하지도 않으십니다. 오직 “열매 맺는 가지”와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분류하십니다. 열매를 얻는 일에는 사제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등의 구분이 없다는 뜻이라 듣습니다. 싱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만이 최상의 포도를 출하하게 될 것이라는 일깨움이라 헤아립니다.

그분께서는 오직 한 가지, 그분 나라의 열매를 위해서 그리스도인을 뽑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채울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일은 천국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3)라고 줄줄줄 바오로 사도께서 자상히 알려주는데요. 사실 열매는 나무의 결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튼실한 열매는 좋은 나무의 결과일 뿐입니다. 가지는 뿌리와 둥치 덕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아무리 좋은 열매를 맺은 들 기고만장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그분께서는 가지 덕분에 열매를 맺는다고, 좋은 가지 덕분이라 추켜 주시니, 기분이 좋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벅찬 ‘가지의 영광’에 취해봅니다.

주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 가지에 대한 심판이 악한 죄를 저지른 자들이 얻은 판결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그분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이 곧 악이며 죄임을 단언하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도취하여 홀로 한 알갱이로 독처하는 모습이 곧 죄임을 일깨우신 것이라 싶습니다. 포도나무에 맺힌 한 알의 포도는 없습니다. 이야말로 그분의 뜻에 어긋나니, 막강한 죄입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열매를 맺는 최선의 방법이 한 알의 밀알이 썩어지는 죽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미 일러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비추니,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증거는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께 매달린 삶은 곧 ‘나의 죽음’을 뜻한다는 진리를 명심합니다. 죽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아갈 때 결단코 그분께로부터 잘려진 비쩍 마른 가지로 전락할 것임을 깊이 새깁니다.

최고의 수확을 거두시려 외아들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하느님께 최상의 열매를 맺어드리는 ‘가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활천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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